군사정권 시절이 이랬을까. 군인 44명이 실종되어 생사조차 알 수 없는데도 ‘북한’만을 언급하며 입을 다물어버리는 정부, 한명숙 전 총리가 기소도 되기 전 신문 1면에 피의사실을 적어 내려간 주요 일간지, 무상급식 4조원을 아껴 반환경적인 4대강 사업에 30조원을 낭비하려는 여당……. 이렇게 ‘속 터지고 답답한’ 일들이 비일비재한 사회에서 국민들이 애정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청소년부터 은퇴세대까지 이민 희망자가 날로 늘어나는 것이 이의 반증이다.
  요즘 교내에서 자주 들려오는 말이 있다. “이 학교를 빨리 뜨고 싶다”는 말이다. 사회가 그렇듯 학교 돌아가는 모습이 속 터져서, 시절이 하 수상하고 답답해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대학원은 우리 학교로 안 갈래요”라는 학부생부터 “빨리 석사과정 마치고 뜨고 싶다”는 대학원생까지, 많은 학생들이 본교를 서둘러 등지고 싶어 한다. 그 ‘회피’의 욕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난해 말부터 학교를 뜨겁게 달군 구조조정은 수차례의 논의와 교무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의 의결 및 심의를 거쳐 이사회까지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숱한 일들이 있었다. 예산이 사라진 학내 언론사는 ‘장례식’을 치렀고, 기존의 새터가 사라졌으며, 학생들은 천막을 세웠다. 어떤 이는 삭발과 단식투쟁을 했고, 또 어떤 이는 학교 공사현장의 크레인과 한강대교 아치에 올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들은 어떻게든 크게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늘 그렇듯이’ 목소리를 들어야 할 주체들이 단단한 벽을 세우면서, 목소리는 벽에 부딪쳐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메아리와 함께 몇 차례 벽 너머에서 들려온 응답은 간결했다. ‘너희의 목소리는 중앙대 학생답지 못하다.’ 그리고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 카드가 날아 왔다. 목소리의 내용은 메아리가 되어 학내를 떠돌고 있지만, 견고한 벽은 좀체 무너지지 않는다.
  사회가 답답하여 생겨난 회피의 욕망은 대한민국을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로 만들었다. 눈 감고 귀 닫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끝내 스스로를 살해하고 있는 것이다. 회피가 극단으로 치달은 모습이다. 이 학교를 서둘러 떠나고픈 이들이 증가할수록 극단의 욕망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김예슬 사건’이 혹 그러한 극단의 모습은 아닐까. 김예슬은 대학에선 배울 것이 없다며 대학 자체를 거부하고 등을 졌다. 대학이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도록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떠나버리고 싶게’ 만드는 대학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끝내 메아리로만 떠돌 경우 김예슬의 발언을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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