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호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추위는 2010년, 봄이 오는 지금도 그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1월 4일 서울에 쏟아진 25.8cm의 폭설이 41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일일 최대 적설량 기록을 바꾼데 이어, 3월에도 폭설경보와 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전국에 폭설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이렇게 북극지방으로부터 불어 닥친 한파와 폭설은 북반구 전역에 수많은 동사자와 교통대란을 불러 왔다. 이탈리아에서는 겨울 홍수로 도시의 60퍼센트가 물에 잠겼고, 네덜란드의 스히폴 공항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공항이 마비됐다.  ‘하늘길’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거미줄 같은 고속철도 노선에서 운행 취소와 지연이 계속되는 등 유럽 전역에서 교통대란이 발생했다. 

  또한 이번 한파로 모스크바와 독일에서는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져 수십 명이 사망했으며 평소 비교적 따뜻한 지역인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도 수백 명이 동사했다.  이런 가운데, 독일 키엘대의 라티프 교수는 “최근의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이산화탄소 배출과 상관없는 자연적 주기에 의한 것이며, 그 온난화 주기들이 이제는 거꾸로 바뀌어 앞으로 20-30년 동안은 기온이 내려가는 ‘미니 빙하기’가 기후변화의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미니 빙하기라는 용어에서 우리는 영화 <투모로우>를 떠올릴 수 있다. 영화 에서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지면서 ‘해양대순환’이라는 해양의 열염순환이 급격히 느려지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리고 이는 해류의 흐름을 바꾸어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거대한 재앙을 일으킨다. 혹시 지금의 북반구 폭설과 한파가 <투모로우>의 현상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투모로우>를 가상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요즘 날씨가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시들기 시작한 지구온난화?
  우선 우리는 날씨와 기후를 구분해야 한다. 날씨는 매일의 하늘 상황을 말한다. 한편 기후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것으로, 세계기상기구에서는 30년 간의 평균 날씨를 기후라고 정의한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뱃머리는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배가 앞으로 또는 뒤로 가라앉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이는 짧은 주기의 파도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배는 그저 조용하게 물 위에 떠있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후학적인 관점에서는 현재의 북반구 한파를 두고 지구가 지구온난화 추세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다만 1970년부터 35여 년 이상 계속되어 온 지구온난화 추세가 2005년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라티프 교수의 주장은 적어도 앞으로 10년 이상 한파 또는 한랭기가 지속되어야만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학자는 근래의 한파와 폭설을 지난 수백만 년간 지속되어온 빙하기와 간빙기의 기후변동에 상응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한파는 아직 한 계절에 불과하고, 현재 전 세계가 우려하는 지구온난화는 앞으로 50년에서 1백여 년 사이에 일어날 기후변동과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이 주장은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정책’때문에 불편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주기성을 혼용하여 현재의 기후변화를 곡해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 지구촌 전역에 한파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소 영하의 날씨이던 알래스카를 비롯한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이번 겨울에 때아닌 더위로 그 기록을 갱신했다. 호주에서는 철로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등 지금 여름을 보내고 있는 남반구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춥기 때문에 그 소식이 크게 들리지 않을 뿐이다. NASA에서는 인공위성 관측 자료를 근거로 지난 2000년부터 10년 간 위성관측을 시행한 이래 ‘가장 더운 10년’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현상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IPCC 보고서, “인간이 인간에게 내리는 마지막 경고”
  지구의 기후시스템은 그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대기권-수권-설빙권-생물권-지권 간에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켜있는 상호작용 때문에 그 변화 방향과 정도를 명확하게 예견하기 쉽지 않다. 외부적인 압력이 증가하더라도 어떤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다가 한계점을 넘게 되면 갑자기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전기 스위치처럼, 지구와 기후도 대기 중 온실가스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평형을 향해 어느순간 급속하게 움직일 것이다. 이러한 비선형적인 행동이 바로 기후변화의 지배적인 양상이다.  

  만약 본격적인 기후변화의 시기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격렬한 환경변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최근 발생한 예기치 못한 이상기후 현상들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1백여 년간 계속된 온실가스의 증가로 지구 평균기온이 약 0.7도 정도 상승했으며, 앞으로도 지구온난화가 더욱 가속되리라는 전망과 함께 2007년에 발표된 IPCC(UN산하 과학자 전문가 집단) 4차 보고서에서도 폭우, 가뭄, 폭설 등 기상이변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최근 유럽과 우리나라에 닥친 폭설·한파는 지구온난화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직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지구온난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주춤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한랭한 날씨를 만드는 불명확한 요인이 사라지면, 지구는 또다시 온난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추운 날씨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잊거나, 빙하기-간빙기의 자연적 변동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지구를 지키고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