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철 /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 교학부장

얼마 전,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 여학생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하의 대자보에서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고 절규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택으로 “길을 잃고 상처받을 것”을 알지만,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했다. 88만원 세대의 슬픈 자화상으로서의 이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는 과연 ‘누가 청년 세대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앗아갔는가’를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청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옆 나라 일본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한 설문조사에서도 자기 나라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했다.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양극화된 세계화 시대에 이러한 현상은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현상이리라. 꿈과 희망을 점점 잃어가는 시대, 그래서 또 다른 이상과 구원을 희구하는 시대, 그것이 바로 오늘의 모습이다.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환경과 맥락은 궤를 달리 하지만, 현실의 고난과 파국을 오늘날보다도 더 치열한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시대와 인물이 있었다. 전체주의가 극에 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발발하던 1940년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22개의 테제 형식으로 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짤막한 글에서 ‘역사적 유물론’과 ‘유대교적 메시아니즘’을 결합한 독특한 역사철학을 제시했다. 역사가도 아니요, 철학자라고도 할 수 없으며, 신학자는 더더욱 아니었던 벤야민이 어떻게 서로 상극으로 알려진 ‘맑시즘’과 ‘신학’을 결합시킨 극단적인 성찰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인형과 ‘신학’이라는 난쟁이

벤야민의 문제의식은 19세기 이래 지나친 객관화와 보편화로 오히려 역사에 대한 왜곡된 상을 정착시킨 ‘역사주의’와 ‘승리사관’의 폐단에 대해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에 이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벤야민이 보기에 역사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나름대로 학문적 순수함을 추구한다는 명분에 빠진 역사주의자들의 “무감각한 태만”이다. 이는 결국 역사의 다른 반쪽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단서로서의 패배자들과 피억압자들의 기록이 삭제되도록 만들며, 모든 문화란 부역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승리자들의 전리품, 즉 야만의 기록임을 간과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역사주의적 사관의 근원적 오류는 적어도 벤야민에 따르면 잘못된 방법론에 있었다. 따라서 그는 승리자들의 마음상태로 들어가 이해하는 ‘감정이입’, 과거를 객관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오인하도록 만드는 ‘서사’, 사실(史實)을 있었던 그대로 되살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재구성’, 이 세 가지를 경험된 세계를 철저히 현장화하는 ‘회상’과 임의의 대상이 그 자신의 연관으로부터 뛰쳐나온다는 뜻의 ‘인용’, 그리고 파괴를 전제로 하기에 일종의 창조행위라고 할 수 있는 ‘구성’으로 각각 대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처럼 새로운 방법들로 무장된 역사 인식이 바로 ‘역사적 유물론’이다. 그동안 어느 역사가에 의해서도 기록된 적이 없는 패배한 자, 억눌린 자, 부역자들의 삶의 복원과 이를 통한 불완전한 역사상의 극복은 이제 “역사의 결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의 빈 페이지를 메워나가야 하는 역사적 유물론자들의 사명이자 과제로 천명된다. 그러나 벤야민의 역사적 유물론은 맑스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우선 그것은 맑스 또는 맑스주의자들이 철저히 거부했던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동기들로 채워진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가장 중요한 제1테제는 오늘날로 치면 컴퓨터 체스 게임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체스 자동기계에 대한 비유로 시작한다. 이 비유에서 벤야민은 언제나 상대편을 이기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인형이 승리의 주체 같지만, 사실은 이 인형을 뒤에서 조종하는, 작고 못생겨서 자신을 드러내보여서는 안 되는 ‘신학’이라는 난쟁이가 승리의 주체임을 암시한다. 요컨대 역사적 유물론자가 계급투쟁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며 행동하는 전사(戰士)의 이미지라면, 신학자는 그 뒤에서 혁명의 당위성을 이념으로 제시하고 혁명이 성공하도록 전략을 짜는 책사(策士)를 연상시킨다.


벤야민식 역사적 유물론은 신학을 넘어 종국에는 구원과 예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메시아니즘’으로까지 나아간다. 인류사가 끝없는 몰락과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신화사이자 자연사를 닮아 있다는 비관적 해석과 파시즘이라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모두가 굴복하고 말 것 같은 현재의 상황 인식, 그리고 패배자들이나 피억압자들이 앞으로도 결코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될 것 같지 않은 미래에 대한 암울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은 역사, 인류, 미래가 구원될 것이라는 꿈과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은밀한 목록을 지닌 채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과거의 인간들과 그들을 구원할 임무를 부여받은 우리들 사이에는 비밀스러운 묵계가 형성되어 있고, 그 점에서 우리에게는 언제나 앞선 세대들이 남겨놓은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가 자연사와 결합되어 있다는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은 어느 때라도 구원의 힘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메시아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처럼 메시아의 현장성과 편재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메시아니즘은 정통 유대교나 시오니즘을 벗어나 카발라적 신비주의 사상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파국으로 치닫는 지금이 바로 구원의 시간

그렇다면 벤야민은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왜 신학적이고 메시아니즘적인 유물사관으로 변형시켰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정통 유물사관에 입각한 이념이나 방법만 가지고는 파시즘과 대전쟁이라는 현재의 광기를 극복하기에 너무나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벤야민이 ‘정통 역사적 유물론에서 빗겨난’ 유물사관과 ‘정통 유대교에서 벗어난’ 메시아니즘을 결합한 독특한 역사철학적 사상 체계를 구축하는 데 끌어들인 주춧돌, 즉 핵심 요소는 바로 ‘지금시간(Jetztzeit)’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전통적인 세 개의 시간범주는 물론, 역사가들이 가정하는 연대기적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를 동형적 시간들로 채워져 있는 공간으로 인식했던 역사주의자들의 ‘역사적 연속성’ 개념 등을 파괴하거나 해체시킨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벤야민의 지금시간은 현재에 근접한 시간이든 현재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간이든, 지금 이 순간에 질적으로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그래서 어떤 ‘결정’과 ‘구원’을 위해 ‘각성’이나 ‘도약’의 방법으로써 지금 이 시간으로 불러내야만 하는 그런 충족되고 숙성된 시간을 뜻한다. 따라서 ‘지금시간’은 인간의 심리적 시간으로서의 ‘카이로스’에 해당하며 ‘단절’과 ‘정지’, 그리고 ‘불연속’과 ‘변증법’의 모멘트를 내포한다. 결국 현재의 응축 또는 기억의 압축으로서, 마치 ‘시간의 블랙홀’과도 같은 벤야민의 지금시간은 그의 역사적 유물론에 신학적 요소가 잘 섞이도록 만드는 ‘유화제’ 역할을 한다. 또 고통 받고 있는 현재가 구원될 수 있도록 과거로 향해 있는 모든 문을 활짝 열어주는 ‘메시아적 시간’으로 기능한다.

시간이 동형성과 연속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나이브한 환상(Illusion)은 매 현재를 치열하게 그리고 독립적으로 인식했을 때 환멸(Desillusion)로 바뀐다. 벤야민에 따르면 바로 이 현재는 ‘예언의 대상’이자 ‘최후의 심판날’에 동참한다. 환언하면, 고통과 파국으로 얼룩진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구원을 필요로 하는 때이기에 우리는 그것의 변증법적 성격을 잘 인식한 후, 그 현재를 지체 없는 행동을 위한 결정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88만원 세대들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의 시간은 동시에 꿈과 희망을 얻기 위해 부단히 행동에 나서야 할 결정과 구원의 시간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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