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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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신뢰가 없다. 전쟁뿐이다. 전략과 전술, 그리고 용맹한 투지가 필요할 뿐이다. 불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총장임명제와 교수평가제 실시부터 시작해 학내는 재단과 본부의 위협적 존재각인으로 내내 시끄러웠다. 이어 결정적으로 신뢰가 깨진 것은 12월 말에 터진 본부의 언론 플레이였다. 토론과 합의가 아닌 오직 승전만을 목표로 하는 그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될 법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발생하자, 총장의 이름으로 차분히 논의하자는 회유의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그러나 방학을 맞아 대부분의 교수와 학생들이 학교를 비운 그 한 달 안에 ‘더 차분하게’ 논의를 개진해보자는 제안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이사장의 학교를 위한 ‘충정’이라며 헤아려달라는 안국신 부총장의 표현에서는 야전텐트 속 사령관의 찌든 담배 냄새가 풍긴다. 그들의 개인적 목적이 충정이든 혁혁한 공이든 상관없다. 다만 그들이 추구하는 구조조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방식이 맹렬하고 전투적이며 전략적이라는 것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제 고지 탈환까지 남겨진 시간은 매우 짧다. 본부위와 계열위, 그리고 학생참여라는 보기 좋은 허울까지 가다듬은 본부 앞에, 대다수 학생들은 그 음침한 전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숨죽여 새로운 조정안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대학의 구조조정 계획이 토론과 협의가 아닌 전쟁이 될 조짐에 심각한 우려가 앞선다. 역사가 오래된 전쟁을 보면 가치와 이념의 뿌리 깊은 차이가 내재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에서는 본부위가 말하는 효율과 시장논리, 기능인 양성과 계열위가 말하는 학문적 수월성, 지식인 양성이라는 가치의 차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이론과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토론과 설명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온 교양인과 지식인들의 공간이다. 무식하게 ‘시대 흐름, 시대 흐름’ 같은 말만 반복하고, 상대 측 말에 귀 막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문과대 교수들의 말처럼 학문단위 재조정은 학문내재적인 검토와 전문적 논의로써 풀어가야 할 것이다.

본부위는 목표를 바꿔야 한다. 구조조정의 신속관철과 개혁단행이 목표가 될 것이 아니라,  민주적 의사결정과 전문적 논의로 이룩한 구조조정의 모범이 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깨어진 신뢰를 다시 쌓아 대학의 본질을 확립하면서 구조조정안의 합의를 이뤄내기에 몇 개월이라는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다. 본부위가 목표를 바꾸지 않는다면 계열위와 학생들도 용맹한 투지로 참전해야 한다. 이 때 전쟁의 탈환 목표는 무식한 재단의 퇴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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