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암 / 서양화학과 겸임교수

 

전통적 예술양식인 그림이나 조각은 조용히 말한다. 그리고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감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작품 감상을 위해서 관람자는 이른바 ‘미적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감상자는 자신의 사적인 주관이나 관심을 버리고, 현실자각을 초월하는 마음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초연한 마음 상태를 통해 관람객은 작품이 의도하는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블로흐는 이 미적 거리를 ‘심리적 거리’로 파악했으며, 올드리치는 이 심리적 거리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관찰’하거나 ‘간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술의 오랜 메시지 전달체계는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을 통해 무너지게 된다. 전통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실험하는 아방가르드 예술정신은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을 전개했다. 아방가르드는 이른바 ‘예술적이지 못한 것’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데,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을 특별하게 픽스된 전시공간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폐품이 될 만한 것들을 서로 붙이거나 쌓아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변할 수 있는 현상들인 시간, 사유, 행위와 같은 것들도 예술적 표현 대상으로 만들었다. 마르셀 뒤샹은 변하지 않는 전통적인 미디어를 고집하지 않았고, 물리적으로 유연한 표현수단을 도입했다. 그의 작품 <자전거바퀴>의 경우 실제 회전하는 자전거 휠을 의자에 거꾸로 고정하여 오브제로서의 변형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또한 그의 <회전하는 유리패널>은 축을 중심으로 각각 거리가 다른 다섯 개의 검은 라인이 그려진 하얀 유리판을 비행기 날개처럼 달아 놓음으로써 유리패널이 모터에 의해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회전할 수 있게 했다(이미지 참조). 그 속도에 의해 스트로보스코프의 시각적 잔상효과가 이루어진 빈 공간에는 완전한 여러 개의 원형이 그려지게 된다. 즉, 이 작품은 변형이 가능한 시각현상의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접촉 가능한 미디어,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1950~60년대, 몸 자체가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미디어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일군의 예술가들은, 동시 다발적으로 당시 새롭게 등장한 매체, 가령 비디오, 텔레비전, 컴퓨터와 같은 것에 주목했다. 예술 작품에 쓰인 이 오브제들은 생활가전과 매스미디어의 산물들로 사용자에 의해 전기 스위치를 켜거나 끌 수 있는, 이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접촉 가능한 미디어들이었다. 이처럼 조작이 가능한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은, 작품에 관람자에 의해 제어될 수 있는 본질적 속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매체의 양방향성은 혁명적인 ‘인터랙티브 예술’의 탄생을 예고했다. 1960년대, 첨단미디어인 소니 ‘포타팩 카메라’의 등장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비디오 영상을 다루는 계기가 되었다. 백남준도 이를 이용하여 영상을 제작하고 매스미디어의 대표적 매체인 TV 작품을 다루었다. 더욱이 그는 전자미디어가 전기적 프로세스에 의해 빛과 그래픽이 이루어지는 것에 주목했고, 재생장치의 전자적 테크놀로지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자석TV>는 주어진 자석으로 텔레비전 수상기와 상호 작용하도록 되어있어, 관람객이 스스로 움직임으로써 보이지 않는 자력의 힘을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TV와 마이크가 세트를 이루는 그의 <참여TV>는 관람객이 TV 앞에서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내면 마이크 음향에 인해 기하학적 파형이 TV 수상기에 나타나게 된다. 관람객의 목소리는 실시간으로 다양한 파장을 통해 변형되는데, 이처럼 관람객은 작품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전자적 작품 프로세스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1970년대에는 디지털 매체인 컴퓨터를 매개로 광범위한 인터랙티브 예술 형태가 나타났다. 특히 관람자를 장시간에 걸쳐 작품에 참여하도록 했는데, 마이론 크뤼거의 <비디오플레이스>의 경우 컴퓨터 테크놀로지인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가상의 오브제들과 대화가 가능한 섬세한 인터랙션의 길을 열었다. 그는 네 모퉁이에 큰 스피커를 두고 벽에는 색 튜브를 매달고 바닥에는 민감한 감지장치를 설치하여 관람자가 들어가면 소리나 빛의 변화가 일어나는 작품을 만들었다. 1970년 <메타플레이전>에 처음 소개된 그의 작품은, 지속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관람자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분석함으로써 컴퓨터상에서 이루어지는 그래픽의 가상 오브제들과 관람객을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 작성된 프로그램 데이터에 의해 인과관계가 제어되기는 하지만, 관람자의 움직임 자체만으로 화면에서 새롭게 생성되거나 사라지는 행위가 만들어져 작품에서 관람자가 곧 창조자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인터랙션은 더욱 발달해 공간 추적장치, 사용자 센서 감지, 환경인식, 위치인식, 동작인식, 사용자전자기 감지 등의 생체인식이나 다양한 소프트웨어 반응, 성장시스템, 프로필 분석등의 인공지능, HMD(Head Mounted Display), 3D 오디오, 하프틱 디바이스(PHANTOM Device), 전자코, 데이터글로브(DataGlove)등의 오감 구현 등 컴퓨터비전과 기계 제어기술, 소프트웨어 통신기술들이 결합하게 되었다. 

새로운 소통, 참여예술의 가능성

인터랙티비티는 새로운 예술경험이다. 관람자와 기계는 더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대화의 유능함은 오브제와의 지능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했고, 오브제는 단순히 센서에 반응하거나 카메라에 입력된 정보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대상에서 지능적이고 살아있는 대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을 살아있는 시스템이라고도 부른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여러 미술관들은 이러한 미술을 대규모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통신 및 여러 가지 발전된 기술들을 접목해 퍼포먼스, 음악 등 공연예술과 결합하거나 생명공학과 같은 인접과학기술과 결합하면서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또한 인터랙티브는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플랫폼을 대상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형태를 웹아트라고 하는데, 유저는 인터넷 주소를 찾아 하이퍼텍스트의 기능으로 다양한 멀티미디어가 연결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

전자미디어는 곧 우리가 처한 새로운 환경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과 문화가 전자 미디어 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예술가는 작품에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보다 새로워진 형태로 입체화된 ‘중층의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람객이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아트는 예술가가 드러내는 사회적 관심이기도 하지만, 그것에 참여하는 관람객의 보이지 않는 욕망이기도 하다. 이것은 복잡하고 위험한 현실의 실제 현상에 참여하지 않고 간접적인 행위를 통해 은유적으로 참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술은 더 이상 이미 완성되고 결정된 오브제가 아니다. 이제 예술은 예술가가 매개물을 던진 후, 수용자로 하여금 숨겨진 내면의 소리를 밖으로 도출하게 하는 소통의 창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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