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강형준 / 문화평론가

 

하워드 진(1922~2010.1.27)을 떠올릴 때면 나는 언제나 어떤 ‘부채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가 살아있을 때도 그랬고, 그가 없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부채감’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건 아마 <미국민중사>를 통해 역사를 아래로부터 바라보게 되면서 느꼈던 어떤 희열어린 ‘희망’을 과연 내가 공부 속에서 펼쳐내고 있는지에 관한 자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 그건 아마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통해 접한 진의 인생에 감동하면서도 내 삶 속에서 그 감동을 ‘반복’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건 아마 <권력을 이긴 사람들>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인민들의 투쟁의 역사를 그 인민들의 ‘언어’로 기록하고 되돌려주는 지식인으로서의 진의 자세를 존경하면서도 이를 내 언어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데 대한 자괴감 때문일 것이다.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위대한 학자들의 지식을 흡수했지만, 무한한 존경심과 부채감을 함께 느끼게 만드는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도서관과 강의실과 연구실에는 천재도 많고 똑똑한 이도 많지만, 우리의 삶과 공부를 한없이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진 스승은 드물다. 내게 진은 그런 사람이다.

투쟁을 통한 공부


1922년생인 진은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시절을 부두 노동자로 힘겹게 지냈다. 대학입학은 2차 대전 참전 이후인 27세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남부의 흑인 여대인 스펠만대학에 부임한 후, 진은 시민권 운동과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겪으면서 자신이 ‘명예롭게’ 여겼던 참전 경험과 정면으로 대결하게 되고, 백인으로서 차별 없이 ‘편하게’ 지냈던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된다. 그가 교수 신분으로 흑인 대학생들의 편에 서서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상식’이고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강의실 바깥에서 수많은 위태로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가르침을 교실 속에만 한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면서, 나는 내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민권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그가 지식인으로서 겪은 첫 번째 대가는 ‘해고’였다. 그러나 진은 후회하지 않았으며 이후로도 인민들과 함께 비뚤어진 권력에 저항하는 것에 평생을 바쳤다. 위대한 역작인 <미국민중사>는 진이 연구실 속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힘없는 인민들이 권력을 당황하게 하고 도망가게 했던 역사를 거리에서 그들과 직접 만들어낸 지식인이었기에 쓸 수 있었던 책이다. <미국민중사> 후기에서 진이 고백하듯, 그는 투쟁 현장의 ‘정치성’과 강의실 안의 ‘중립성’ 사이의 괴리를 견딜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썼다. 바로 이 ‘견딜 수 없음’을 인식하게 했던 투쟁의 경험이 이를 학문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공부’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우리 시대 지식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진은 ‘우리 시대의 지식인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하나의 사표(師表)를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정언명령으로 환원되는 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지식인’ 역시 단지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고, ‘선생’은 ‘소비자’인 학생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여 수입을 창출하는 이’로 재정립된다. 이런 식으로 규정된 ‘학생’과 ‘선생’은 오직 계량화된 ‘업적’을 쌓음으로써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속의 게이머와 다를 바 없다. 결국은 강의실과 연구실 바깥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침묵이 요구되는 셈이다. 스펠만대학과 보스턴대학 캠퍼스 바깥의 문제들에 참여하면서 이를 통해 자신의 연구를 심화시켰던 진의 생애는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의 야만 속에서 공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위대한 스승에 대한 틀에 박힌 존경심을 뛰어넘어, 그의 삶을 내가 새롭게 ‘반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존재론적 물음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안팎이 파국의 기미들로 가득한 세상을 살며 우리는 때때로 좌절한다. 이 시대는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마음의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진전이 없어 보이는 대학원에서의 학업이 그렇고, 자본의 침투가 학문 구조조정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오늘날 대학의 모습을 볼 때 그렇다. 그럴 때면 나는 진의 말을 떠올리고는 한다. “미래는 현재의 끊임없는 연속이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을 거부하는 가운데 우리가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방식이라고 믿는 바처럼 지금을 살아간다면, 바로 그 자체가 위대한 승리이다.” ‘지금’을 어떻게 살 것인가, ‘여기’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버티고 벼릴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승리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힘든 일이지만,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모든 견고한 것들이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지는’ 지금, 진의 죽음 이후 우리는 다시 어떤 견고함을 꿈꿔야 하는 책무를 떠맡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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