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5.5 화 23:34
기획사회
위기에 직면한 21세기의 대학개혁김철 / 경기대 교직학과 교수
이재원 편집위원  |  stjekyll@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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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호]
승인 2010.03.03  17: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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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는 대학을 일컬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아름답다’의 의미는 과연 현재에도 유효한 것일까. 이미 대부분의 대학은 21세기 지식기반사회, 정보화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좇아 개혁의 바람에 편승하고 있다. 이제 대학은 시장경제에서 즐겨 쓰는 ‘경쟁’이라는 개념에 몰입되었고, ‘하나의 산업체’라고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어떤 학자는 오늘날의 대학을 ‘기업’, ‘공장’이라는 단어로 압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의 본질적 이념, 연구·교육·봉사
 현대적 의미로서 대학의 기원은 서양 중세 말경 발생한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과 살레르노대학, 프랑스의 파리대학, 그리고 영국의 옥스포드대학과 캠브리지대학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초기 대학들은 고등교육기관의 직접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설립되었던 것이 아니라, 학문적 연구의 필요성과 진리탐구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 ‘우니베르지타스(universitas)’라는 조합을 형성해 교회나 국가 또는 도시로부터 공인을 받아 설립되었다. 대학이 조합의 형태로 출발했다는 것은 그들이 외부의 세속적인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나름의 ‘자율성’을 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시의 대학들은 오늘날처럼 취업에 대한 준비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종교와 지배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오로지 지도자 양성(성직자)과 더불어 진리탐구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대학의 본질은 17세기에 절대권력을 지닌 군주와 국가권력의 출현으로 교육과 진리탐구가 아닌,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와 합리적인 사고, 이성적 도야 등이 대학교육의 목적이 되었다. 독일의 훔볼트는 대학의 본질을 ‘고독’과 ‘자유’로 표현하면서, 대학은 국가 및 사회와의 관계에서 ‘자주적으로 고독하고 자유로운 교수(敎授)와 연구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강조하였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연구, 교육 외에 ‘사회봉사’가 대학의 이념으로 자리매김했다. ‘사회봉사’의 이념은 19세기 중반에 미국 주립대학의 이념으로부터 생성되었는데, 이는 농업교육과 공업교육 지원을 위한 연방정부 토지의 사용허가를 골자로 한 ‘모릴법’에 의해 출현한 것이었다. 이 법의 제정과 발효로 오늘날의 주립대학이 탄생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기존의 대학들도 광활한 땅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학과를 설치하여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사회봉사’는 학문연구, 교수와 더불어 대학의 본질을 규정하는 대학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20세기가 되자 미국의 대학은 상업주의와 실리적, 실용적 직업훈련에 치우친 나머지 본래 대학의 이념을 상실하게 됐다. 당시 시카고대학 총장이었던 허친스는 이를 비판하며, 대학은 학자들이 학문을 향한 공통적인 대화를 일삼는 독립적인 사고와 비판의 센터로서 독자적·자율적으로 사고하는 삶들로 구성되어 있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대학의 본질적 기능인 진리탐구와 사회봉사, 전인적 지도자 양성을 실천하기 위해 대학의 자율성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대학의 본질은 대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즉 대학의 정체성에 관한 지난한 논의의 결과들이다.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 대학
 오늘날의 대학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 군사정권 체제를 겪는 동안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대학의 본질과 이념을 지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은 외부의 간섭에 압도당해 연구와 교수라는 본질적 역할 수행이 주체적, 독립적일 수 없었다. 그나마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군사독재권력은 청산되었지만, 시장권력이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으로 작동하면서 대학의 공급 과포화로 인한 생존경쟁은 대학의 개혁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었다. 여기에 지식기반사회, 정보화시대의 요구는 그동안 유지되어오던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부터 미세한 영역까지 모든 것을 변화시키면서 대학에도 경쟁력 제고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쟁원리를 개입시키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시장, 생산성, 경쟁력 등의 시장경제적 논리가 그 영역을 초월하여 대학의 정체성 담론까지 자리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대학도 하나의 경영으로 간주되어 학문의 영리화, 교육의 실용화, 지식의 도구화라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대학이 경제 원리에 충실해야만 시대적 과제를 성취하는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학 본래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대학 구성원의 자율적인 의사소통은 타자의 논리와 외부의 폭력에 의해 폄하되고 훼손당하고 있다. 이제 대학은 그 사명을 실천하는 공공교육기관이 아니라, 경영권자의 사적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작금의 몇몇 사립대학 사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학 교육이 황폐화되고, 대학의 이념과 본질, 그 사명이 망각되기에 이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오늘날의 대학은 새로운 사회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지식, 정보가 중요한 시대라 할지라도 이를 위해 대학이 그 본질을 도외시한 채 외부의 간섭에 의해 교육활동의 실리적인 면만을 추구한다면, 결국 대학을 통해 지금까지 존속되어온 인간의 존엄한 가치가 훼손되고, 이는 인간소외의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대학은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체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교육 활동에서의 궁극적 목적은 전인을 키워내는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정보화사회에서 각각의 인격체들이 외부에 의한 인간성의 분열을 극복하고 최대한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전체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서 완성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형성되어온 대학의 본질적 역할을 바탕으로 21세기의 사회적 요구를 조화롭게 반영하는 하나의 실천적 사회 장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존 메이스필드는 이러한 조화로움의 실천을 예견하여 대학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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