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리-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아이티는 멀었다. 지구본에서도 멀고 마음에서도 멀었다. 아이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음산한 부두 인형과 검게 번뜩이는 축구선수들의 얼굴, 옛날 옛적에 노예혁명이 있었다는 이미지 뿐, 그저 그런 이름의 소국이 하나 있구나 하고 여길 따름이었다. 내 기억 속에 뿌옇게 자리하고 있던 아이티를 되살리고, 더불어 이 책을 알려준 것은 공교롭게도 최근의 대지진이었다.
과거의 기록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걸출한 소설같이 새롭고 강렬한 이 책의 이야기는 프랑스인들이 산도밍고 섬에 진출하기 시작한 17세기 중엽부터 시작한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실려 온 수십만 명의 흑인들은 비인간적인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으며 백인과의 인종 혼합으로 인해 피부색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노예들은 자유를 꿈꾸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노예들의 굴레에 균열을 만들어내자 마침내 1803년, 그들은 굴레를 완전히 깨트리기에 이르렀다.
그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지도자가 바로 투생 루베르튀르로, 저자는 그를 전인적 인물이자 뛰어난 카리스마를 지닌 혁명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역사는 이런 사람들이 이끌어간다고 피력하는 저자를 보고 있자면 ‘엘리트주의’라는 달갑지 않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그는 투생에 대한 찬미나 노예제의 잔혹함, 서구 열강에 대한 분노를 서술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책의 가치는 아이티 혁명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끊임없이 조명해 내는데 있다. 책이 처음 출간된 해가 1938년이었으니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블랙 자코뱅>은 아이티 혁명이 아이티만의 것이 아니라 그들 선조인 아프리카의 것이며 나아가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에 속하는 것임을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돌부리에 걸린 듯 편치 않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자유·평등·박애의 상징으로 세계에 그 명예를 떨치고 있는데, 아이티 혁명은 왜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일까. 수많은 돌부리가 발을 잡아챈다. 책장을 덮었지만 부두교의 노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쓰라림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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