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슬라보예 지젝은 오늘날의 지성계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1949년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류블랴나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파리 8대학에서 라캉 연구로 두 번째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독일 관념론과 라캉 정신분석학의 결합을 통한 자신의 사유를 할리우드 영화 같은 현대 대중문화 분석에 적용해 설명하며, 이를 다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라는 실천적 차원의 과제로 제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지젝이 지식인 사회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1989)을 통해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을 규명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이 책에서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호명하는 주체화 과정이 아니라 행동 자체에 기입되는 무의식적인 믿음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그는 현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냉소주의라고 판단한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환상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몰랐다는 듯이 행동한다.” 지젝은 ‘권위적인 아버지’와 달리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는 ‘관용적인 아버지’의 예를 든다. 관용적인 아버지는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아이의 내적인 자유의지까지 강제한다는 점에서 더욱 압제적이다. 자유의 역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지만, 우리의 현실에 구조화되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쉽게 제거할 수 없다는 데서 나온다.

이렇게 환상에 기초한 상징적 질서 안에 존재하는 주체의 의미는 <까다로운 주체>(1999)에서 잘 드러난다. 지젝은 데카르트적 주체라 불리는 근대이성주체의 이면에 있는 절대적인 부정성을 탐색한다. 그에 의하면 데카르트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코기토로의 환원 속에서 자기-안으로의-철회를 성취했다. 수동적 자기철회는 광기의 통과이며, 자기 밖의 모든 존재를 부정하는 폭력적인 모순의 제스처를 뜻한다. 지젝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통해 주체를 상징적 주체화에 저항할 수 있는 불완전한 틈새와 균열이 존재하는 텅 빈 주체로 재구축한다.

최근 그는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2008)에서 차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전체주의로 비판 혹은 호도되던 ‘보편성의 추구를 통한 정치적 해방’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정치적 기획의 표본으로 보는 사람은 레닌인데, 레닌주의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선택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지젝은 단순히 현 상황이 제시하는 강요된 선택을 따르는 행위들(activities)이 아니라, 행위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잠재적인 선험적 좌표들 자체를 (소급적으로) 바꾸는 어떤 광기와도 같은 결단으로서의 행위(Act)를 주장한다. 지젝의 이와 같은 급진성과 혁명성에 대한 모색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고민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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