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호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질문: 20대 후반의 남자입니다. 일종의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제게는 무엇 하나 잘난 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결심한 일들은 언제나 이루지 못했습니다. 노력조차 안 하고 있어요. 무슨 목표를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구요. 여자친구도 그래서 떠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결국 저도 루저일까요. 물론 키 또한 180이 안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 좀 해주세요. 아님 혼이라도 내주시든가.


진단: 저 또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무능함을 은폐하고자 상담가에게 그 어떤 위로도 요청하지 말 것을, 어떤 위안도 드릴 수 없음을 공표했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지 싶군요. 그래도 원고료는 챙겨야겠으니, 자신을 루저로 깎아 내리는 것과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 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려는 감정과 그 원형을 같이 한다는 이야기는 해 드리고 싶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못난 모습을 대면하기 두렵거나, 어차피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까 두려워 선수쳐서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죠. 감옥에 다시 가게 될까 두려운 전과자가 그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 감옥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본인이 지금 그러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신가요. 자기 욕망의 모습을 확인하기 전에 ‘난 하급의 사람이야’를 미리 읊어대는 거지요. 당치 않은 것이건 말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뻔뻔스럽게 만나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의 시시함에 결국 실망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구요.

 


처방: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 중 최고를 꼽을 때마다 다들 엇갈립니다. 소년감성에 미련이 남은 오타쿠라면 <이나중 탁구부>를 꼽을 테고, 루저들의 갯벌에서 더 비비적거리고픈 이들은 <크레이지군단>을, 그들에게 닥쳐올 비극의 무드에 경도되었다면 <두더지>를 꼽을 텐데, 지금은 <시가테라>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결말의 위력 때문인데요. 확정되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불안감과 기대감이 세월과 대결했을 때 맞는 가차 없는 운명을 그는 참으로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담담한 호들갑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선선하지만 옆구리를 툭 치는 결말에서 그는 다정하지만 준엄하게, 그래도 어쨌든 살아는 보라고 읊조립니다. 그는 확실히 개그가 가진 비극성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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