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규 / 창원대 건축학과 교수

특별기획-흑석캠퍼스 공간분석 ⑤학내공간의 자치성
현재 본교 흑석캠퍼스는 건물 신축 및 리모델링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간의 변화로 학내에 다양한 논의가 생산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흑석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심층적인 공간분석을 통해 대학공간이 지니는 다양한 상징성과 정치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대학 캠퍼스가 바뀌고 있다. 민주화와 IMF를 경험하면서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바뀜에 따라 대학사회, 대학문화의 지향점이 달라졌으며, 대학공간 역시 세련되고 우아하게 바뀌었다. 지난 20여 년간 대학공간은 구체적으로 공공 디자인의 강조, 친보행공간의 구축, 유비쿼터스 기술의 도입 등 당면과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캠퍼스의 광장이나 공공 공간들은 공원이나 조경공간으로 탈바꿈하여 학생들의 쉼터가 되었다. 건물들은 리모델링을 통해 아름다운 입면들을 갖게 되었으며, 친환경 설계기법이 적용된 건물들이 속속 등장했다. 실내 공간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강의실은 이제 최첨단 IT 기기로 무장하여 전자교탁은 물론 학생들의 결석도 자동으로 체크해주는 기술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이러한 학내 공간의 변화는 결국 학생들의 편의를 증진하고 녹색성장과 첨단 IT기술을 강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잘 들어맞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대학문화와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러한 변화 역시 당연한 것인가. 그저 대학당국이 세련되고 우아하게 꾸며주는 캠퍼스 공간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변화한 대학 공간과 21세기판 캠퍼스 생활의 낭만


  공간은 배치를 통해 그 전략을 드러낸다. 교실은 빔프로젝터와 전자교탁이 있어서 교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탁과 이를 바라보는 책상의 배치로 인해 교실의 기능을 갖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스승-제자의 권위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그동안 우리네 중등교육은 물론 고등교육의 교실에서 이루어졌던 일이다. 공간의 전략은 실내공간뿐 아니라 실외공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례로 캠퍼스의 정문은 그야말로 수많은 캠퍼스 인구가 드나드는 주요 길목으로서 그 상징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또한 입학식과 졸업식,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던 대운동장이 캠퍼스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간들이 점차로 상업 자본을 앞세워 세미나룸과 쇼핑몰을 동시에 가진 복합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강의동 사이에 위치했던 광장이나 공공 공간들도 곱게 단장된 정원들로 바뀌어가고 있다.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배치되었던 공간들이 이제는 장식된 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무대장치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첨단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우아한 정원에서 휴식을 즐기고, 세련된 식당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철저히 개인으로 파편화된 21세기 판 낭만의 캠퍼스 생활을 보내고 있다.

  대학문화는 인기연예인들의 공연장이 되어버린 대학축제로 대표되고 있고, 대학교육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데 최고의 목표를 두고 있는 오늘날, 대학공간의 변화는 이에 맞춰진 결과일 것이다. 대학에 복합쇼핑몰이 들어서고 광장이 사라진 자리에 모던한 조경공간이 조성되는 것은 대학문화와 대학교육의 전반적인 변화의 결과다. 복합공간의 세미나룸 대여료가 비싸다거나, 대학 안에 있는 식당에서 2만 원 상당의 스파게티를 판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사실 지엽적인 논의일 뿐이다. 이보다는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소비자로 전락해버린 대학생들의 위상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학생들 스스로 대학교육을 소비하고 대학문화와 대학공간을 소비하는 수준 그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논의 자체는 성립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것이 소비보다는 생산에, 파편화된 개인보다는 연대에 있다면 이러한 논의는 더욱 뜨거워져야 한다. 그리고 대학 공간의 소비자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공간이 전략을 가지고 있듯이,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들도 전략을 가져야 한다. 대학재정의 확보라는 명제 아래 상업 자본에게 캠퍼스 교정의 열쇠를 건네주게 된다면, 대학공간의 상업화는 더욱 발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자본이 차려준 밥상을 자본의 매뉴얼대로 먹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것은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들의 문제다.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대학의 주인은 학생과 교수, 교직원이라는 얘기가 과연 오늘날에도 해당이 되는 것인가. 오늘날 학생은 대학의 주인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캠퍼스를 이용하는 고객으로 간주된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생이라는 주체, 그 자신에게 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해볼 수 있다. 예컨대 캠퍼스 계획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 확립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상당수의 대학에는 이러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수립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대학당국도 캠퍼스 계획의 수립 주체에 학생기구를 포함하는 등의 노력을 다분히 기울여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대학의 엄연한 한 구성원인 학생기구도 꾸준한 의견수렴과 연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또 하나는 지역사회와의 연대이다. 내부 문제의 해결은 때로는 외부에서 돌파구가 나타나기도 한다. 캠퍼스 내부로부터 소통과 교류의 장이 줄어들기에 이러한 노력은 더욱 필요하다. 물론 담장을 허물거나 평생교육원을 운영하는 등 대학당국의 노력도 존재하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교류의 시도가 전개되어야 한다. 상황은 분명히 바뀌었다. 대학의 공간이 화장술로 치장되고 있는 동안, 자본의 전략에 매몰되지 않도록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들의 재미있고 창의적인 기획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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