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헌법재판소는 야 4당이 제기한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청구에서 심의·표결권 등 권한이 침해됐음을 인정하면서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컨닝은 했지만, 부정행위는 아니다”, “도둑질을 했지만, 장물은 아니다” 등 “~했지만, ~아니다”는 식으로 판결문을 패러디하는 이른바 ‘헌재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절차적 과정의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무효 청구를 기각한 헌재의 자기모순적 결정을 비꼬는 것이다.


 헌재의 이러한 판결은 정치적인 부담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는 선고로 민주당에는 미디어법에 대한 재논의 명분을 주고, 무효 청구를 기각함으로써 한나라당에는 실질적으로 미디어법이 발효되는 실리를 안겨줬다는 분석이다. 1년 여 동안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법안인 만큼 논란의 핵심에서 비켜서려는 것이다. 실제로 이강국·이공현 재판관은 “기능적 권력분립과 국회의 자율권 존중의 의미에서 원칙적으로 심의·표결권 침해만 확인”했다고 밝히며, 위헌·위법의 시정 등 사후조치는 국회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이런 폭탄 돌리기 식의 헌재의 입장은 비겁할 뿐더러, 스스로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절차적 위법성에 대한 경고성 결정일 뿐 구체적인 효력이 없다. 때문에 앞으로 국회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해도 제재할 수가 없어 부끄러움과 염치를 잃은 다수당의 횡포가 재현될까 우려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헌재의 결정이 ‘무효’라는 판단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지, 미디어법 자체가 ‘유효’라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도 이에 주목해 ‘무효언론악법폐지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미디어법 폐지·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불법절차의 주체인 한나라당과 미디어법의 수혜자인 보수언론의 태도는 가관이다. 한나라당은 아전인수식으로 맥락을 삭제한 채 헌재의 ‘유효’결정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헌재의 판결이 난 다음 날 보수신문의 면면을 보면 벌써부터 미디어법의 폐해가 드러나는 듯하다. “소모적 논쟁 접고 미디어산업 육성에 힘 모으자(중앙)”, “탄력 받은 방송 개편, 종편 내년 상반기 선정될 듯(조선)” 등 헌재 결정 논란보다 향후 전망에 초점을 맞추며 자사의 이익을 좇는데 급급한 모양새다. 절차의 위법성을 무시한 채 이대로 미디어법 시행을 강행한다면, 국민들은 “당선은 됐지만, 국회의원은 아니다”, “신문은 내지만, 언론은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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