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호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질문: 석사 1년차 조교입니다. 저와 같이 조교하는 친구는 애교의 달인. 인정합니다. 그녀는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예요. 모임 때면 언제나 교수님 옆자리에 앉아서 별 재미도 없는 교수님 이야기들을 경청하고 일일이 리액션 해주는 거 보면 ‘아, 난 절대 못 저럴 거야’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업무는 부실하기 그지없어 제가 수습하느라 고생한 적도 여러 번이에요. 서툰 일처리를 아부와 애교만으로 때우려는 것 같아 빈정 상합니다. 뭐, 대인관계도 실력의 일부라면 할 말 없습니다만 대학원마저도 이런 요소들만 어필되는 현실이 슬퍼집니다. 무임승차자가 활개를 치는 것이 제대로 된 현실인가요.

진단: 문제는 당신 말대로 제대로 되먹지 못한 이 현실의 사람들에게 당신 또한 인정을 받고 싶다는 거겠지요. 실력이 아닌 편법으로 세상을 날로 먹는 것 같은 저들을 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단지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이 둘은 언제나 함께 따라오는 짝패죠. 그녀의 실수는 남들이 몰라주니 그녀의 콧소리와 함께 당신 안에서 이스트처럼 부풀어 오를 것이고, 동시에 당신의 뼈 빠지는 노고는 알아주는 이 없으니 당신에게서 필요 이상으로 고귀하게 반짝일 테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슬프지만 언제나 진실은 첫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나를 제대로 보고 있으며 둘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사람들을 제대로 못 본다는 것입니다. 사실 윗분들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진가는 당신 안에 꽁꽁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편견’안에 있기 때문이죠.

처방: 자신을 냉정하게 응시하기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디 알렌 영감님이야말로 그 방면의 달인이에요. 그중에서도 영화 <부부일기>를 우선적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우디 알렌만큼 자신을 가혹하리만치 추레하고 우스꽝스럽게 카메라 앞에 던져놓고 동시에 그 뒤에서 스스로를 관찰하는 예술가도 드뭅니다. 이 영화는 그를 완전히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았던 스캔들의 한복판에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여기서도 떠들썩했던 한국인 입양녀 순이 프레빈 사건의 기사를 꼭 먼저 살펴보시길. 그리고 현실에서 망가진 자신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주시하세요. 우디는 렌즈 너머로 역겨운 자신의 끝장까지 기어코 보고야 맙니다. 놀랍게도 ‘유쾌하게’ 말이죠. 한수 배우세요. 평가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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