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옥 /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특별기획-흑석캠퍼스 공간분석
④공간사용의 정치성

현재 본교 흑석캠퍼스는 건물 신축 및 리모델링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간의 변화로 학내에 다양한 논의가 생산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흑석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심층적인 공간분석을 통해 대학공간이 지니는 다양한 상징성과 정치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약학대학 및 R&D센터’ 공사가 시작되고, 교문의 위치가 슬그머니 바뀌면서 소리없이 사라진 공간이 있다. ‘Y로’가 바로 그곳이다. 예전 교문이 있던 위치에서 본교의 설립자 임영신 여사의 동상이 서 있는 영신관 앞까지 100여 미터의 진입로를 따라 걸어 들어오면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교양학관으로 향하는 길이 양 갈래로 나누어진다. 그 길의 모양이 알파벳 Y자를 닮았다고 해서 Y로라고 불렸고, Y로는 90여 년 중앙대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즉, Y로는 중앙대의 내부로 향하는 길목이자 중앙인의 일상이 시작되고 마감되는 곳이었다. 다양한 약속과 만남의 장소였으며, 축제와 주점의 거리, 집회와 투쟁의 열린 광장이었다. “장소에 내재되어 있는 기억의 힘은 위대하다”고 했던 키케로의 말처럼 Y로는 중앙대를 거쳐 간 무수한 사람들의 기억이 각인되고 회상되던 문화적 기억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Y로를 기억하라 

  Y로가 사라진 것은 ‘CAU 2018’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중앙터 조성사업’으로 인한 것이다. 중앙터 조성사업은 학교의 지형도를 급속히 바꾸고 있다. ‘중앙도서관’이 리모델링을 마쳤고, ‘공대 및 창업보육센터’가 증축 중이며, ‘기숙사’와 ‘약학대학 및 R&D센터’가 신축 중에 있다. 새로운 공간이 조성되려면 기존시설의 변경이나 훼손은 불가피한 것이겠지만, Y로만큼 치명적인 ‘삭제’를 당한 곳은 없다. Y로의 아랫부분은 ‘약학대학 및 R&D센터’에 의해 봉쇄되었고, 오른쪽 갈림길은 주차통제시설에 의해 두 동강이 났다. Y로의 중심에 있던 임영신 동상은 영신관 쪽으로 멀찍이 밀려났고, 교문은 사람보다는 차들의 통행로가 되어버렸다. 이렇듯 강압적으로 막히고 뒤틀리면서 Y로는 원래의 형태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누군가는 최첨단의 연구공간이 생기는데, 그깟 길 하나 없어진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르페브르의 말처럼 “(사회적) 공간은 (사회적) 생산물”이고, 모든 공간에는 그 공간을 기획하고 생산한 사람들의 이데올로기가 작동되고 있기 마련이다. 또한 공간의 “사용자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것이 무엇이든 수동적으로 체험”하면서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힘이다. Y로를 고민의 흔적조차 없이 지워버린 ‘CAU 2018’의 공간정책에도 ‘효율’과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어김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학교 입장에서는 시도때도없이 술판이나 벌어지고, 대자보와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확성기가 울리고, 사람들로 북적댈 뿐인 Y로는 효율의 측면에서 결코 생산적인 공간이 아니다. 따라서 Y로를 없애고 최첨단 연구센터를 짓는 것은 공간의 생산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통제까지도 가능한, 이중의 효과를 얻는 효율적인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 Y로가 중앙대의 역사와 조감도에서 조용히 사라져야만 했던 이유이다.  

 

삭제되고, 금지되고, 통제되는 공간들 

 

  Y로만이 ‘삭제’라는 비운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지금 학교 곳곳에서 ‘효율’이라는 이름의 공간정책들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고, 이에 따른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4월, 흑석캠퍼스의 건물 외벽마다 100, 200, 300대의 번호들이 부착되었다. 그 번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90여 년 동안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가져왔던 건물들이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낯선 번호들로 불리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기획처는 “건물명 형식을 통일시킴으로써 특정 단대 소유 건물이 아닌 중앙대 구성원 모두의 건물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누가 들어도 수긍이 가지 않는 옹색한 변명이다. 크지도 않은 캠퍼스, 많지도 않은 건물들에 번호를 붙인 자체가 중앙대의 과유불급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다. 또한 구성원들의 정서적 반감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부착된 번호들은 건물마다의 고유성과 개별성이 사라지든 말든 행정편의적으로 관리의 효율만 높이면 된다는 학교 당국의 의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얼마 전 도서관 옥상 휴게공간인 ‘CAU-Garden’에서 담배를 피우다 CCTV에 적발된 학생들이 공개사과를 한 사건이 있었고, 대학원 건물 3층에서는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공간 사용에 대한 통제와 금지, 이를 어길 시에는 처벌까지 불사하겠다는 학교의 입장이 더욱 강경해졌다. 또한 최근 문과대학 옥상, 문과대학 앞 해방광장 등 학교 곳곳에 벤치와 나무 조경, 재떨이용 옹기 등이 갖춰진 휴게 공간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공간의 조성과 구획짓기는 학생들로 하여금 정해진 장소에서만 흡연을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학교의 금지 명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갖는다. 

  삭제하고, 금지하고, 통제하는 공간정책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패턴과 행동방식을 학교의 이해에 맞게 재조직하고 규율화 한다. 공간의 실질적 사용자이자 대학사회의 한 주체로서 우리는 학교 공간의 사용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관찰할 의무가 있다. 또한 공간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과 권력관계를 해독하고 규명하면서 공간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일방적으로 강행되는 학교의 신자유주의적인 공간정책에 제동을 걸고 대학이라는 사회적 공간을 보다 민주적인 공공공간으로 바꾸어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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