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세광 /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푸코의 저서에서 ‘실존의 미학(l’esth럗ique de l’existence)’이라는 주제는 그가 작고하는 1984년 출간된 <쾌락의 활용>과    <자기배려>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푸코는 여기서 명백히 상이한 두 유형의 모럴 체계에 대한 기술을 시도하였다. 윤리를 지향하며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관건인 고대 그리스·로마의 모럴과, 이와 정반대로 율법에 복종하고 자기를 버림으로써 구원의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인 기독교 모럴이 그것이다. 푸코가 고대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규칙들의 코드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기독교적 도덕관념이 일련의 이유 때문에 이제 사라져가고 있고, 또 이미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모럴의 부재를 실존의 미학이 대체해야 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푸코에게 윤리와 실존의 미학은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존의 기술은 발견이 아닌 발명의 대상
인간이 지배관계와 권력관계, 그리고 지식과 편견의 포로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푸코는 이것들과 더불어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는 우리가 자기 스스로와 맺는 관계 정립방식의 포로임을 의미한다. 일상적인 자기개혁의 노력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타인들과 맺는 잡다한 관계에 진저리가 나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비겁함 혹은 무미건조함에 진저리가 나고,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의 처신방식에 염증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어떤 공포나 욕망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요컨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푸코가 ‘자기기술(la technique de soi)’이라 부르는 기술들에 호소할 수 있다.
오늘날 이와 유사한 기술들은 사실상 심리학적 테크닉, 자기인식의 테크닉과 같은 것으로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자신의 심층적인 성격과 자신의 숨겨진 정체성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푸코는 <성의 역사> 2·3권, <주체의 해석학>, <자기통치와 타자의 통치>, <진실의 용기> 등과 같은 말기 저작을 통해 고대의 자기기술들, 특히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의 자기기술들을 연구하면서 고대인들이 결코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이디푸스적인 자기정체성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해낸다. 고대인들이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노력은 결코 ‘자기인식’의 작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고대의 윤리적 주체가 제기하는 문제는 오히려 ‘나를 무엇으로 만들어야 하는가’였다. 그것은 추적하고 발견해야 할 정체성, 혹은 인식해야 할 주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하여 변형시켜야 할 행동, 즉 윤리와 미학의 문제였다.
푸코는 고대에 자기를 분리시키는 것은 ‘인식’의 거리가 아니라 ‘현재의 자기’와 완성해야 할 ‘생이라는 작품’ 사이의 거리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대의 주체에 관한 문제는 자기를 인식하는 데 집중되거나, 수련을 통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궁극적인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는 기독교의 수덕주의에 집중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의 삶을 작품의 재료로 간주하여 변형시키는 실천적인 작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푸코는 이를 일컬어 ‘실존의 미학’이라 명명했다. 그것은 주체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려 노력하는 것에 방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숙고된 규칙에 따라 자신의 생을 구축하고, 자기 실존의 근간 내에서 일정한 행동 원리들을 현시하려는데 방점이 주어진 윤리적·미학적 실천인 것이다. 푸코는 오늘날 현대인들을 지배하는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적 테크닉, 즉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오이디푸스적인 정체성 탐색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려 한다. 실제로 실존의 테크닉은 다수이다. 우리 각자는 그것들을 발명해내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 또는 철학적 자기해석이든 간에 해석의 테크닉을 통해 숨겨져 있던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푸코는 많은 사람들이 타자의 해방에만 골몰할 때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을 피력하며 실존의 미학을 말했다. 이와 관련해 많은 비평가들은 푸코가 정치적 영역과 권력비판의 장을 포기하고 개인적인 윤리의 장으로 피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푸코가 정치영역으로부터 윤리영역으로 이행하고, 권력의 메커니즘과 통치의 절차들에 집중된 일련의 역사적 연구로부터 주체화의 테크닉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주체화 절차에 대한 연구로 이행한 것은 위와 같은 단순한 피신의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다. 자기의 창조적인 생산으로서의 실존의 미학은 보편적인 주체의 형상으로의 회귀도 아니고, 정치적 장의 포기도 아니다. 푸코는 생의 황혼기에 정치의 막다른 골목 앞에서 절망하여 그 출구로서 윤리의 장을 열려고 시도한 철학자가 아니었다. 말기에 푸코가 시도한 자기테크닉에 관한 일련의 연구가 동성애자, 여성, 소수민 등을 위한 새로운 형식의 투쟁을 명확히 현시하고 또 지속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이 논지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푸코는 개별 인간이 스스로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노력 속에서만 권력에 대한 궁극적인 저항이 가능하다 고 생각한다. 그는 윤리를 정치의 포기 속에서가 아니라, 정치와의 팽팽한 긴장관계, 상관관계 속에서 성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투쟁의 관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곧장 오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맥락을 제거하면, 고대의 자기배려 형식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현대의 천박한 쾌락주의, 소박한 삶의 행복, 오늘날의 소위 ‘웰빙’이라 불리는 바의 어리석은 종용과 혼동될 것이다. 푸코는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하는 배려·경배·통제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고대의 지혜로 되돌아 갈 것을 제안하거나, 영성 훈련들의 치료적 효력을 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푸코가 제안하는 것은 소비사회의 ‘행복의 기술’이 아니다. 결국 내적 만족의 원천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체성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주요 관건이다. 푸코는 이러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차이와 거리를 도입함으로써, 우리들이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주체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창조하려 시도한다.

윤리적 투쟁과 정치적 혁명은 하나
푸코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고대의 주체화 방식을 기술하면서 근대 주체화 방식의 역사성과 불안정성을 폭로한 바 있다. 이는 고대철학을 통해 우리에게 차이와 낯섦의 효과들을 발생시키려 한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의 언표들로부터 출발해 상이한 주체성의 모태들을 복원함으로써 푸코는 근대 주체에 대해 철저한 문제제기를 한다. 그래서 푸코는 우리가 주체로서 우리 자신과 맺는 가장 비역사적으로 보이는 관계방식이 갖는 탁월한 역사성을 증명함으로써 현재의 보편적이고 숙명적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우리의 주체성이 지극히 일시적인 형상임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 자신을 지금의 우리와 다르게 구축할 수 있음을 명백하게 현시한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투쟁이 정치적 지배에 대한 저항이나 경제적 착취로부터의 해방만이 아니라 정체성의 예속에 항거하는 자기해방의 투쟁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자기의 통치(윤리)와 타자의 통치(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는 오늘날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직도 시의적절하다면, 그것은 윤리적 혁명과 정치적 혁명이 상호 순환적인 운동일 때에 한에서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의 문제는 해방·억압이라는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기배려와 실천에 입각해 수치스럽지 않고 아름다우며 살만한 작품으로서의 자기를 생산하는 절차와 실천의 문제이다. 푸코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은 행동철학이며, 그것은 판별하여 배려에 입각해 자기를 생산해내면서 절연하고 새로이 변형·생산해야 하는 현실태와 연결된다. 자신의 고유한 지식과 경험을 통한 이 같은 자기변형과 자기생산의 절차는 미학적 경험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윤리학적인 실천이며 동시에 탁월하게 정치적인 실천이다. 사람들은 흔히 푸코에게는 ‘진정한’ 인식철학이 없다, ‘진정한’ 정치철학이 없다, ‘진정한’ 도덕, ‘진정한’ 미학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레데릭 그로가 지적하듯이 이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푸코는 결코 이 분야들을 각기 따로 떼어서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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