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편집위원 | stjekyll@hanmail.net

‘루저문화’란 말 그대로 ‘패배자(loser) 정서의 문화’다. 오늘날의 루저문화 확산은 세계적 불황과 극심해지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많은 이들이 낙오자로 전락하는 현실 상황에서 비롯한다. 루저문화는 특히 대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운명을 겪어야만 하는 ‘88만원 세대’ 사이에서 보편화되고 있다. 음악계에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백수의 비루한 일상을 실감나는 가사로 풀어내 호응을 얻었고, 출판계에서는 백수활동가 마쓰모토 하지메가 쓴 <가난뱅이의 역습>이 일본의 다양한 백수운동을 소개하며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인디밴드 ‘타바코 쥬스’의 보컬 권기욱의 발언에서 시작된 ‘안 될 거야, 아마’ 패러디 놀이가 유행하기도 했다.


루저문화는 지식인과 문화평론가들 사이에서 흔히 저항문화로 읽힌다. 승자가 될 수 없는 대다수가 루저문화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유희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자각하게 되고, 또한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루저들 간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루저문화를 일개 소비문화로 보는 시각이 있다. 루저문화는 한갓 상업적 대중문화의 소재일 뿐이며, 이를 생산해내는 자들은 정작 패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루저문화의 향유는 저항이 아니라 오히려 현 사회의 질서에 순응해 계급체계를 확대 재생산하는 역효과를 낳게 된다. 그밖에 루저문화를 언론매체의 호명효과로 파악하여 이를 둘러싼 논의 자체를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루저는 언제나 음악과 영화의 좋은 소재로 다뤄져왔는데, 진보적 성향의 언론매체가 정치적으로 여론을 조성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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