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 / 건축학부 교수

특별기획-흑석캠퍼스 공간분석

현재 본교 흑석캠퍼스는 건물 신축 및 리모델링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간의 변화로 학내에 다양한 논의가 생산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흑석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심층적인 공간분석을 통해 대학공간이 지니는 다양한 상징성과 정치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캠퍼스가 있는 흑석동에서 검은 돌(黑石)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추측하자면 이웃의 현충원과 관계가 있을 법하다. 검은 돌은 주로 묘비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추측의 단서는 흑석동과 이어지는 상도동의 이름이다. 상도(上道)는 윗길이 아니라 상두꾼이 사는 상두골이 변음된 것이라고 한다. 땅의 이름으로 풍수의 길흉을 논하려는 의도는 없다. 땅의 유래와 장소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덧붙이면 양택과 음택으로 나누는 인간의 거처로서 묘역은 소위 명당에 해당한다. 한강을 굽어보고 남산을 바라보는 입지는 강남의 노른자위라는 압구정동과도 바꿀 수 없는 조건이다.

흑석캠퍼스의 역사적·공간적 고찰

   흑석동은 총독부의 도시계획에 의해 명수대일원이 개발되며 시작되었다. 임영신 박사의 중앙보육학교가 이곳으로 유치된 것은 개발을 촉진하는 계획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혼란기에는 미군캠프가 주둔하기도 했는데, 현충로 변의 저지대는 연못이 있던 곳으로 기지촌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골목을 들어가면 쪽방 구조들이 남아 있다. 흑석동에 중앙대의 캠퍼스가 조성된 것은 캠프가 철수하고 시설이 확충되면서부터이다. 옛 중앙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차경순이 1953년에 파이퍼 홀을 설계하고 도서관 등 여러 건물의 건설에 관여했다는 기록을 보아 195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 캠퍼스의 틀이 잡혔을 것이다.

   캠퍼스의 면적은 약 4만3천3백 평으로 비정형이고, 표고 차 54m의 경사지형이다. 북쪽으로 비탈진 대지에 세워진 25동의 건물이 땅을 차지하는 면적은 약 1만2천5백 평이며 시설면적의 합은 약 8만 평이다. 땅의 면적에 비해 건물이 차지하는 평면적인 비율은 28.8%이고 입체적인 비율은 187.7% 정도이다. 주거지역이 건폐율 60%와 용적율 200%를 상한선으로 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여유가 있는 공간이나 자연녹지지역의 20%를 감안하면 100%를 기준으로 볼 때 과밀한 편이다. 더구나 경사진 지형으로 인해 땅과 건물의 관계가 긴박하게 조성될 수밖에 없으므로 옥외공간은 더욱 협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

    캠퍼스는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신축 중인 R&D센터에서 본관에 이르는 낮은 지역과 중앙도서관에서 공대를 지나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중간 영역, 그리고 법대에서 후문으로 연결되는 높은 지대이다. 캠퍼스의 입구가 되는 낮은 영역은 건물의 규모가 작고 배치의 형식이 지형을 따르고 있어 소담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으나 신축건물과 영신관 등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 알 수 없다. 또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정문영역에서 본관 앞의 연못이 어떤 기능을 담당할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특히 청룡 조형물은 중앙대의 아이콘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시 다듬어야 한다. 시간을 먹어 푸르게 변한 청동색이 아니라 청색으로 칠해진 조각상은 마치 플라스틱 장식품 같아서 생경하다. 개교 100주년을 앞둔 역사의 증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함에도 그에 걸맞는 상징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새로 손질된 중앙도서관과 이웃의 서라벌홀은 중간 영역에 위치하지만 시기적으로 아래의 낮은 영역에 속한다. 학생문화관과 공대의 두 건물로 이루어진 중간영역은 개발 드라이브의 시대적인 배경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어서인지 난개발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가파른 대지의 경사를 건축이 소화해내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거듭된 증축으로 봅스트홀의 공간이 변질되었고 건축의 형식도 기능의 해결에만 맞추어진 나머지 내외의 공간은 아무런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운동장의 소음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제2공학관은 캠퍼스의 문법에도 맞지 않아 푸대접을 받고 있다. 운동장은 캠퍼스에서 가장 크게 비어있는 공간이다. 이곳의 개발계획은 마지막 가능성의 장소로서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후문영역은 캠퍼스에서 가장 높고 젊은 공간이다. 신축된 법학관과 체육관 등은 현대적인 감각과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건축적인 문제는 크게 드러나지 않으나 문제는 밋밋하게 뻗어있는 광장이다. 중앙문화예술관, 미디어공연영상관, 대학원, 법학관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경사면을 따라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낮은 곳의 평지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한강과 남산이 훤히 보이는 언덕에서 조망을 가리는 차단벽처럼 건물이 배치되었다는 것은 지형적인 특징을 살린 캠퍼스의 개성 창출을 포기한 것이다. 통로에 지나지 않는 의미없는 광장보다 한강을 조망하는 공간이 형성되며 언덕에 기대어 열린 자세를 잡았다면 후문광장은 중앙대의 아크로폴리스가 되었을 것이다.

마스터플랜의 부재 아쉬워 

   캠퍼스를 분석하며 드는 생각은 마스터플랜의 부재와 임시방편의 해결이 빚어낸 개념의 결핍이다. 그동안 캠퍼스를 일구며 다듬어온 많은 수고와 그간의 사정들을 모르지 않으나 땅의 형국과 건축의 관계를 치밀하게 따지지 않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건물을 만드는 것과 더불어 건물과 건물이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하며, 건물의 내부공간을 해결하는 것과 동질로 외부공간의 형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을 간과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비탈진 땅에 짓는 건축은 평지에 짓는 집과 다른 접근, 다른 방법이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채울 것인가 보다 어떻게 비울 것인가로 땅을 다루었어야 한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공사가 아니라 인간의 환경인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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