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균 /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위원

자본주의의 겨울나기 : ②지금 왜, 칼 폴라니?

최근 개도국을 중심으로 경제 사정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경제는 작은 위기로도 휘청일 수 있는 불안정한 자본주의의 겨울을 맞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살피고 대안경제의 기틀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시장은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스스로 문제를 외재화하지 않는 지속가능성의 자기 완결 시스템이 아니다. 오히려 실업, 경제위기, 빈부격차, 환경위기, 인간관계의 파괴, 인간성의 왜곡, 주체의 상실 등 수없이 많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시장의 바깥으로 방출한다. 소위 외부 효과(external effect)가 그것이다. 물질적 복지의 자동적인 증대에 대한 대가가 적지 않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물질적 복지의 증대 혜택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과 국가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시장 시스템이 이러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고, 그에 더하여 시장 시스템이 인위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통제 불가능성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최근에 발생한 금융위기와 그 여파로 회생 불가능한 수준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 세계 경제위기는 우울한 미래에 대한 회색빛 전망에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있다. 미국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금융파생상품을 만들었고, 그 여파로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의 위치를 지킬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일본, 영국, 싱가포르와 다수의 서유럽 국가들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했던 종속 이론가들이나 세계체제론을 주장했던 월러스틴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자본과 기술을 소유한 중심부 국가들이 그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문제는 누가 해결해야 할 것인가. 많은 이들은 시장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을 국가의 역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하버마스가 <후기자본주의 정당성 연구>에서 이미 시장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를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듯이, 국가가 시장 시스템이 야기하는 부담의 외재화를 모두 떠안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는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의 한계가 의사소통 합리성에 의한 사회 규범의 창출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가능성은 경험적 현실에서 거의 관찰되지 않고 있다. 유럽은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으로 빈부의 차이를 조금 줄인 복지국가, 공적 영역의 축소를 줄인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성장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동반하지 않을 수 없는 임금 인상이 성장의 발목을 붙잡았다. 고임금은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저임금 국가의 출현 이후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 제조업 유출의 주된 원인이 되었고 이후 고임금 국가들은 지속적인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파괴력을 경고한 칼 폴라니

   칼 폴라니는 그의 유명한 저서 <거대한 변환>에서 시장의 파괴력을 비판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는 시장이 어떠한 저항도 다 삼켜버리는 무소불위의 힘으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 증거로 폭로하고 있는 몇 안되는 학자이다. 시장의 팽창력은 사회를 무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산업 시장이 대금융가들에 의해 보호되어 왔던 유럽의 백년 평화의 시기, 절대 빈민을 구제하고자 했던 스피남랜드 법의 역효과, 노동자들의 참정권을 위한 차티스트 운동의 수용 과정, 붕괴 위기에 처했던 경제 체제를 되살리기 위한 파시즘의 등장 등을 자기 조정적 시장과 국가 간섭주의 사이의 관계, 산업 계급과 금융 사이의 관계, 금본위제ㆍ환의 안정과 보호무역주의 사이의 관계 등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는 동안 현대사는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의 위대함은 수없이 많은 역사적ㆍ문화인류학적ㆍ경제학적 자료 등을 시장의 팽창 과정과 사회의 자기 방어라는 문화인류학ㆍ경제학ㆍ사회학ㆍ정치학적 핵심 이론들이 동원된 두 축으로 꿰어 설명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훌륭한 사회과학 방법론이 아닐 수 없다. 

   폴라니는 사회적 위세를 매개로 하였던 교환이 사회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냉혹한 논리, 곧 동등성의 원리에 의한 교환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다시 되뇌어보도록 하고 있다. 대다수의 주류 사회학 이론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가치나 이념이 사회변동의 한계를 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변환>에서 “모든 사회가 경제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것처럼 시장과 경제가 사회변동의 주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뚜렷하게 비추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변동이 시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시장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사회의 자기방어 노력이 모두 시장에 의해 무력화되거나 시장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차가운 머리’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따뜻한 가슴’으로 인간과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본래적인 가치, 즉 사회적인 것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어야 할 필요성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사실, 인간의 궁극적인 자유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폴라니가 <거대한 변환>을 완성한 것은 1943년이다. 그 이후 폴라니가 직면하지 못한,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금본위제가 붕괴하고 변동 환율제가 도입되었다. 상업 계급을 보호하던 금융가들의 역할이 뒤바뀌어, 금융 자본에 의해 산업 자본이 공격받는 금융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 선진국이라고 불려왔던 고임금 국가들은 저임금 국가와의 제조업 경쟁에서 더이상 유리한 위치에 서있지 못하다. 2008년 9월 이후 시장 경제의 힘을 보여주는 결정적 근거였던 미국에서 시장의 자기조정적 기능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시장에 대한 정치적 간섭, 사회적 방어가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에 도달하였다.

   세계화와 저임금 국가의 출현, 두 요소의 맞물림은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세계화는 전 세계 기업에 세계 시장에서의 국제 경쟁력을 요구하고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평균적인 이윤율에 도달하도록 전 세계 기업을 강제한다. 고임금과 저임금 사이에서 발생한 삼투압은 고임금 국가의 제조업을 저임금 국가로 이동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고임금 국가에서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제조업 공동화가 진행되는 고임금 국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기업들만이 살아남았고 그 대기업의 종사자들만이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 결과 고용없는 성장,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폴라니를 넘어, 대안경제로 나아가기

   그러나 세계 경제의 위기를 막고자 제조업의 이동을 막기 위해 이미 진행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로 보인다. 다시 국경의 장벽을 쌓아 제조업의 이동을 막고 보호 무역주의를 실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폴라니의 따뜻한 가슴이 요청하는 대로 세상은 움직여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시장의 힘을 줄일 수 있는가. 시장이 제공하는 물질적 복지는 다른 한편에서는 그 물질적 복지에 도달하여야 하는 강제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평균적인 생활수준에 이르기 위한 노력에 있다. 평균적인 생활수준과 경제력 획득이라는 집합적 힘이 개인에게 강제력으로 작용하고 그 강제의 결과가 다시 모여 평균적인 생활수준과 경제력 획득의 집합적 힘을 재생산하고 있다. 답은 그 강제력을 줄이는 방법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 창업이 그 하나의 대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가 종업원이면서 모두가 주인인 그러한 형태의 사업체가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모두가 버스 한 대를 직접 소유하고 모두가 직접 운전하는 버스 회사를 생각해보자. 근로 의욕이 높아질 것이고, 수입이 높아질 것이다. 다만 모두가 주인으로서 행세하려 할 경우, 의견 대립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공동 창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연대를 통한 인간의 힘이 문제해결의 핵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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