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 /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국사회 질병 보고서 : ② 황색사회의 녹색망상증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질병은 무엇일까? 이번 기획에서는 MB정부 집권 이후 우리 사회를 잠식해오고 있는 그늘진 현안들을 질병으로 비유하여 진단하고 분석해본다. 이번호에서는 대규모 토목사업에 혈안이 되어 있는 MB정부가 ‘녹색성장’이라는 슬로건을 꾸준히 내세우는 아이러니를 ‘녹색망상증’으로 진단, 그 증상의 면면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토건이라고 하면 ‘흙 토(土)’자가 들어가니까 황색을 떠올리기 쉽다. 실제로 토건사업 현장에는 황색 흙먼지가 많이 날리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의 토건사업은 대체로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을 건설하는 것으로 끝난다. 따라서 토건을 상징하는 색은 황색이 아니라 회색이다.

토건 망상증은 회색 사회를 만들고, 회색 사회는 토건 망상증을 악화시킨다. 회색 사회는 병적으로 비대한 토건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불필요한 거대한 토건사업을 강행하는 기형적 개발사회다. 토건 망상증은 거대한 토건사업을 끊임없이 강행하는 것으로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이루고 개인의 복리를 충족할 수 있다는 병적으로 맹목적인 믿음에 빠져 있는 상태를 뜻한다. 불행히도 한국은 이러한 회색 사회와 토건 망상증의 독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진정한 선진화’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회색 사회와 토건 망상증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지 않고는 이것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건국가의 개념을 중심으로 토건 망상증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토건 망상증은 단순히 병리적·지엽적 현상이 아니라 토건국가라는 병리적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토건국가라는 병리적 구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개혁해야 한다.


토건국가라는 병리적 구조


필자는 2004년부터 토건국가 한국의 실태와 특징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관심은 훨씬 이전으로 올라간다. 사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년 전부터 늘 어디서나 큰 토건사업이 끊이지 않는 이 나라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이 상황을 토건국가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2004년부터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을 중심으로 토건국가 한국의 실태와 특징을 연구하고 개혁방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학자로서 용인하기 어려운 지적 현상을 깨닫고 고심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토건국가에 대한 지적 오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토건국가에 관한 많은 글과 강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토건국가가 환경문제를 다루는 개념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토건국가가 병리적이고 지엽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반응은 토건국가라는 개념을 대단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토건국가라는 개념은 1970년대 후반에 일본의 학자들에 의해 현대 일본 사회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병리적이고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를 다루는 것이며, 환경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문제를 파악하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토건국가 한국의 실태를 보자. 2006년에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던 대규모 공공 토건사업은 무려 766개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4대강 죽이기’를 강행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수는 1천 개를 훌쩍 넘었을 것이다. 전국이 공사판이라는 느낌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생생한 사실이다. 토건국가 한국에서는 매년 민간부문에서만 100조 원이 넘는 토건사업이 발주되고 있으며, 공공부문에서는 매년 50조 원이 넘는 토건사업이 발주되고 있다. 매출액 기준으로 한국의 토건업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국가들 중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다. 2위인 일본도 1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2006년에 한국의 시멘트 사용량은 일본의 2배였다.

이른바 ‘공구리 공화국’이라는 것은 단순히 비아냥거리는 말이 아니다. 토건국가 한국은 설악산의 계곡에서 새만금 갯벌에 이르기까지 온통 ‘공구리’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이 때문에 홍수, 수자원 감소, 생태계 파괴의 문제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여기서 토건국가의 주체인 ‘토건족’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토건족은 일차적으로 혈세로 지불되는 막대한 사업비와 보상비를 노리고, 이차적으로 막대한 개발이익 또는 투기이익을 노리며 불필요한 대규모 토건사업을 끊임없이 강행한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통해서 확립된 토건국가와 토건족이 이제는 ‘강 죽이기’마저 감행하게 되었다.
 

‘거대한 변환’을 위해 토건국가의 개혁 필요


이렇듯 토건국가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경제적 비중은 국내총생산의 20%이지만 각종 연관관계를 따지면 그 사회적 비중은 아마도 50%를 훨씬 넘을 것이다. 보수언론의 가장 큰 광고주는 토건업체이고, 한국의 재벌은 모두 토건업체를 가지고 있는 토건재벌이며, 토건업은 부패도가 세계 40위 수준인 부패국가 한국의 가장 큰 부패원이다. 한국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고 개혁하기 위해서는 토건국가 문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서구의 연구들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토건국가 한국의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서구의 연구에서 이곳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사실 지적 식민성의 발로일 수 있다.
토건국가의 핵심은 국가가 막대한 혈세를 불필요한 대규모 토건사업에 퍼부어서 토건족을 살찌우는 데 있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최고권력의 문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 이면에는 각종 개발공사들로 대표되는 거대한 공공토건조직들이 작동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설립된 도로공사, 토지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 한국전력 등의 ‘6대 개발공사’는 그 대표조직들이다. 토건국가 한국의 개혁은 이러한 6대 개발공사를 대대적으로 통폐합하고 토건 중심의 재정을 개혁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자연을 지키고 복지를 누리는 ‘생태복지국가’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정부조직과 재정구조의 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토건국가의 개혁은 ‘생태복지국가’를 향한 ‘거대한 변환’이다. 토건국가 한국은 ‘강 죽이기’라는 극단적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강 죽이기’를 중단한다면, 즉각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고, 밥을 굶는 노인과 소년이 없을 것이고, 우리의 강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남을 것이다. ‘강 죽이기’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토건국가 한국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생생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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