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 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선진화위원회를 구성해 부실 운영 사립대학의 구조조정을 계획하는 등 대학 연구사회는 대내외적으로 개혁과 혁신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점에서 연구사회를 둘러싼 정치적, 산업적 압력에 대항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내부 성찰과 정체성에 대해 반성을 모색하는 5가지 이슈를 제기해본다.

글 싣는 순서  ①학계의 사회 공헌 ②다학제적 연구의 모색 ③연구를 위한 인프라Ⅰ- 시설, 자금 ④연구를 위한 인프라Ⅱ - 제도  ⑤교수와 제자 관계  


 

학문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행위이다. 과거 학자들의 업적과 현재의 사회적 환경에 기대어 학문 활동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동시대와 미래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학문 자체의 즐거움과 그 과정의 고독함 때문에 이러한 사실이 가려지기도 하지만,  학문 활동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나 당장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제작 행위를 넘어선다. 정돈되고 안정된 사회, 곧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없이는 학문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 활동의 사회적 의미가 언제나 강조되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학문 활동에 종사하고, 그 사회적 결과가 간접적이거나 느리게 드러났기 때문에 학문이 사회적 행위라는 사실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도래한 지식기반사회, 전문가 사회에서는 학문이 가지는 실질적인 사회적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지게 되었다.

 학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내부의 자각 우선돼야

이와 같은 변화 때문에 학문 활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이 과거보다 훨씬 더 강조되고 있다. 학문의 사회성이 새롭다기보다는 그에 대한 인식과 요구가 새로워진 것인데, 이러한 요구가 학문공동체 내부의 자각보다 외부의 압력으로 표출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학문의 사회적 기여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학문공동체 내부의 고민이 요구된다.
학문의 ‘무한 자유’를 주장하기 이전에, 먼저 학문행위의 맥락과 장기적 결과에 대한 숙고가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로서 자신의 연구가 인류의 삶의 질과 좀 더 나은 세상을 이루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연의 무분별한 개발, 윤리적으로 민감한 기술들의 성급한 추구, 외국 사상과 방법론의 무비판적 수용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학자들에게 있다. 급진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학문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문활동을 일단 보류하고 숙고하는 것을 통해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기본적인 연구윤리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말하기조차 민망한 기본적인 사안이다. 표절, 중복게재, 연구결과의 조작 및 날조, 연구원 착취 등을 뿌리 뽑기 위해 학문공동체 내의 자성이 필요하다. 몇 년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연구 부정 사건에 연루되었던 많은 연구자들이 경미한 징계만을 받은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계에 남아 활동할 수 있는 것은, ‘국익’을 앞세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대중의 열망보다 더 큰 문제이다. 학문적 전문성의 권위는 도덕적 권위 없이는 인정되기 힘들다. 학문공동체의 특성상, 새로운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선배 학자들의 솔선수범과 지도가 매우 중요하다.
위의 두 항목이 연구 내적인 부분이라면, 연구 외적인 측면에서의 사회적 기여도 매우 중요하다. 학문적 성취나 조사를 왜곡하거나 부당하게 이용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 사회적 혼란을 막아야 한다. 또한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외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객관적 입장을 밝히고, 의견이 다를 경우 학문적 토론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가의 견해가 중요한 국가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이 때 전문가의 객관성 유지 노력이 엄청난 도덕적 무게를 가지게 된다. 정부 정책을 둘러싼 학자들의 이견을 많은 국민들이 정치적 성향의 문제로 환원하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 학자들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면, 학문공동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끊어지고 만다.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건설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자본과 권력은 그 특성상 단기적 결과를 중시하지만 학문공동체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준비하는 보다 광범위한 차원의 임무가 있다.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협력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할 분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학문과 사회를 연결하는 대학의 역할

이런 점에서 학문공동체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은  자본 및 권력과 학문공동체를 연결하는 역할과 동시에 후자를 전자로부터 보호해주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필요는 대학에 대한 국가의 교육지원과 산학협력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다. 눈앞에 닥친 요구를 맞추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학문공동체가 사회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연구윤리에 대한 외부적 압력이 강해지면서 학문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당혹감과 모멸감,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밖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학문과 사회의 연관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발적인 연구문화 갱신의 노력이다. 이 노력이 학문공동체 내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일회적이고 선언적인 연구윤리의 선포는 무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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