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R이 만들어낼 혁명적 변화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1세기 전반부에 ‘GNR 혁명’이라는 것이 일어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새로운 물결을 창조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번 기획에서는 GNR 혁명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GNR 혁명을 통해 변화할 인간의 위상과 사회의 모습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특이점이 온다 ②로봇공학의 지형도 ③GNR 시대의 인간 ④GNR 혁명과 국가정책
G+N+R이 만들어낼 혁명적 변화


박성원 /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유전학(Genetics), 나노공학(Nanotechnology), 로봇공학(Robotics)의 혁명적인 변화가 인류의 미래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바꿔놓는다는 주장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학문은 우리에게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세 학문이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킨다고 가정한다면? 예컨대 유전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낱낱이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나노공학이 분자단위의 조립을 실현하고, 이를 통해 자기복제가 가능해지고,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로봇이 이런 기술을 사용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런 시나리오를 위의 세 가지 학문의 이니셜을 따서 ‘GNR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수백 년 뒤의 일이라면 공상과학영화쯤으로 웃고 넘길 텐데 고작 40년 뒤에 펼쳐질 미래라고 한다. 물론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50년 동안 미래를 연구한 미래학계의 결론이다. 그러나 GNR 혁명의 시나리오는 레이 커즈와일이라는 걸출한 과학자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주장한 것이어서 미래학자들도 그의 ‘예언’을 비상한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전자 피아노(신디사이저)와 맹인을 위한 문자판독기를 개발해 세계 최고의 발명가에게 수여하는 MIT-레멀슨상과 전미(全美) 기술상을 수상한 검증된 과학자다.

GNR 혁명을 바라보는 시선들

GNR의 혁명적인 조합과 연쇄반응에 대해서는 커즈와일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주장했다. 더글라스 멀홀은 2002년 펴낸 그의 저서 <Our Molecular Future: How Nanotechnology, Robotics, Genetics and AI will Transform Our World>에서 GNR의 발전으로 인류는 새로운 테러리즘, 특허권 소멸, 그리고 관계지향적 시각의 소멸 등을 경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GNR 혁명을 바라보고 있을까. 우선 대중적인 관점에서 유전학, 나노공학, 로봇공학의 이른바 ‘3인조’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2006년부터 현재까지 주요 일간지에서 이들 3인조의 영향을 보도한 기사의 주요 제목으로는 ‘지구의 주인이 바뀌나?’, ‘맹목적 과학신봉, 인간소외 부른다’, ‘인공지능 나노무기 등장, 테러 위험 높아진다’ 등이 있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3인조를 두고 ‘10년 뒤 한국의 성장 동력’으로 꼽거나, ‘미래의 연봉 톱, 나노공학자’로 추켜세우는 기사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에 적극적으로 응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이 같은 대중의 시각과 달리 학자나 전문가 집단의 관점은 어떨까. KISS 학술검색엔진에서 3인조를 주제로 쓴 논문을 찾아보면 ‘일반적 인격권과 유전공학’, ‘GNR 혁명과 탈(脫)인간주의 시대의 지식생산’, ‘반(反) 생명시대의 도래’ 등 주로 유전학의 사회적 영향을 다룬 논문이 많다. 그러나 로봇공학이나 나노공학에 대한 논문은 찾기 힘들었다. 과학자들은 신기술의 동향 파악에 급급하고, 인문·사회과학자는 신기술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한국 사회가 GNR의 파급효과를 단편적으로 관찰하고 있으며, 과학자와 인문·사회과학자의 공동연구가 서구사회와 비교해 미약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기술을 인간화하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데 기술을 응용하려는 노력도 찾기 힘들었다. 이런 점에서 장회익 명예교수(서울대 물리학과)가 <위기의 80년대와 미래의 모색>에서 “새로운 기술을 이해할 틀을 만드는 것보다 우리가 지향할 미래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한 것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창조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먼저 그리지 않고 GNR 혁명의 파급효과를 따지는 것은, 결국 우리가 아닌 타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GNR 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대비해야

GNR 혁명의 파급효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 로봇은 지금 빠른 속도로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있다. 감정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로봇은 점차 적절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점점 좁아질 것이고, 결국 누가 인간이고 로봇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커즈와일이 주장하는 GNR 혁명의 시작점이 될 2040~50년은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로봇과 인간을 구별할 수 없는 시대를 의미한다. “생물학적 존재와 비(非)생물학적 존재의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인 것이다.
스리랑카 출신의 미래학자 서스탠샤 구나리테이크는 기독교는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지만, 불교는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인간만이 영혼이 있다는 생각, 혹은 변하지 않는 ‘자아(自我)’가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을 것”이다. 마가렛 애트우드는 SF소설 <Oryx and Crake>에서 인류가 유전공학을 잘못 이용한 결과 물, 식량, 그리고 햇빛이 없는 지구를 만들어 모든 생명체가 멸종한다고 경고하면서, 과학과 정치학이 만나 신기술의 오용을 피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위와 같은 GNR 혁명이 변화시킬 사회의 모습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반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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