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006 
최동민 / 독어독문학과 석사과정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에는 바이올린으로 죽음의 푸가를 연주하는 푸른 눈의 독일인이 등장한다. 감미로운 선율의 바이올린을 켜는 독일에서 온 죽음의 장인. 이러한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놓는다.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인 독일의 국민이 도대체 어떻게 파시즘의 집단광기에 빠졌을까?” 이 질문은 전후 독일의 비판 지식인들에게 풀기 힘든 숙제로 제시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이러한 질문의 해답을 여러 방면에서 모색하였다. 그 중 한 명인 에리히 프롬은 파시즘을 “자유로부터의 도피”현상으로 규명하고, 칸트적 의미에서 자유의 자유로움 너머 존재하는 자유의 ‘무거운 의무’를 역설한다. 그리고 독일의 파시즘을 독일의 시민·소시민 계층이 경제적 위기 상황 속에서 ‘무거운 자유의 의무’로부터 도피하여 ‘가벼운 굴종의 의무’만이 존재하는 파시즘으로 귀의한 ‘파우스트의 거래’로 설명한다.
한나 아렌트 또한 ‘아이히만 사건’을 통해 파시즘의 책임 회피적 경향을 발견한다. ‘유태인 최종해결’의 책임자였던 SS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법정에서 “공무원으로서 명령에 의해 일했을 뿐 모든 책임은 총통에게 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수백만 유태인을 학살한 ‘악마’ 아이히만을 기대했던 아렌트가 예루살렘에서 목격한 것은 한 명의 평범한 노인이자, ‘악의 평범성(Banalit둻 der B쉝e)’뿐이었다. 한 명의 시민이 자유의 책임과 의무로부터 도피하여 절대적 권력 밑으로 도주하여 가치 판단을 중단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파시즘의 바이러스는 언제든지 활개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파시즘 바이러스는 경제적 위기 상황과 항상 함께 나타난다. 현재 경제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도 ‘자유로부터의 도피’현상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파우스트의 거래’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독일의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일 것이다.

 

No.0006 
구본우 / 사회학과 박사과정

칼 폴라니에 따르면, 18세기 말 인류는 새롭게 등장한 기계제 시대 - 폭발적 생산력을 가지면서도 매몰비용(sunk cost)이 큰 기계제 생산의 시대 - 에 어떻게 사회를 조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19세기 자기조정적 시장체제는 ‘개인적 자유’와 ‘평등한 교환’이라는 이념에 기초해 이 질문에 답해 보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유토피아였다. 시장체제가 확대될수록 오히려 인간과 자연은 파괴되어 갔으며, 결국 1930년대에 시장이라는 해법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기획임이 명백해졌다. 이에 따라 ‘개인’을 ‘국가’로 대체하고 ‘평등한 교환’을 ‘관리’로 대체하기 위한 시도가 하나의 뚜렷한 흐름으로 등장하는데, 파시즘, 사회주의, 뉴딜 등의 기획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을 다른 것과 결정적으로 구분해주는 것은 파시즘이 ‘자유와 민주주의 제도의 파괴’를 일관된 지향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파시즘의 이론적 기초를 닦았던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영혼을 가진 개인의 부정이다. 이들에 따르면 개인은 법적·행정적으로 이름 붙여질 때에만 의미를 갖는 허상에 불과하고, 이를 기초로 사회를 조직하게 되면 그 결과는 무질서와 불안정일 뿐이다. 파시즘이 그리는 사회에서 인간은 오직 전체 산업적 메커니즘에 종속되어 있는 기능적 요소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역사적으로 우연하게 등장한 하나의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사회를 조직하기 위한 실천적 기획으로 봐야한다.
기계제 시대에 대한 인류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자기조정적 시장체제, 계획경제로서의 사회주의, 파시즘, 뉴딜 등의 구체적 실체들은 역사 속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져갔지만, 이러한 기획들은 여전히 인류의 상상 속에 각인되어 있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기획이 위기에 봉착하여 파시즘적 기획이 새로운 옷을 걸치고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인류가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반해 새로운 사회적 기획을 상상하고 구체화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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