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찬 / 서울대 인문대학 연구교수

‘존재미학’은 말년의 미셸 푸코가 만들어낸 조어이다. 존재를 미학과 결합시킨 매우 독특한 조합의 이 용어를 통해 푸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삶 자체를 예술로 고양시키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서양문화사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요구는 아니다. 이는 세기말 이래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이 몸소 실천해 보여주려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서양철학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사유범주인 존재와 근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생겨난 새로운 철학분야인 미학을 결합시킨 이름으로 세례를 내린 것은 사상사적으로 매우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서양의 사상전통이 2천년 이상 유지해온 존재론적 위계질서를 근본에서부터 뒤엎으려는 일종의 역성혁명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상사적으로 푸코가 이러한 혁명을 기도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존재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영예는 “모든 가치의 전복”이라는 급진적인 구호 하에 서양의 사상전통 전체와 홀로 맞싸우는 일에 일생을 바쳤던 니체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니체가 일관되게 추구하였던 지적 과업은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 사유전통의 주류가 되어온 주지주의의 대부 소크라테스가 진리의 척도로 내세운 논증적 이성, 즉 로고스에 맞서 파토스의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이 점에서 니체는 20세기 서양사상의 중요한 흐름의 하나인 이른바 로고스중심주의와 형이상학 비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니체는 존재미학이라는 극히 도발적인 용어가 현대 학문의 세계에 버젓이 등장할 수 있는 기

반을 마련하였다.

 

삶의 근원적 영역으로서의 미학


니체의 첫 저서 <비극의 탄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예술의 발전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논리적 통찰뿐만 아니라 직관의 직접적 확실성에 이르게 된다면, 우리는 미학을 위하여 많은 것을 얻어낼 것이다.” 위의 문장에는 니체가 일관되게 자신의 세계관의 토대로 삼게 될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개념이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논증적 인식과 직관적 인식을 대립시키고 후자에 우위를 두는 인식론적 태도가 표명되어 있다. 또한 앞으로 그의 철학적 사유가 나아갈 방향까지 강령적으로 선언되고 있다. 실제로 이후 전개될 니체의 철학적 사유는 전통철학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해 왔던 존재론과 인식론의 지위를 미학에 넘겨주기 위한 일관된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미학은 헤겔 이후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온 것처럼 ‘미적 현상에 관한 학(學)’이 아니라 ‘삶의 근원적 체험에 관한 학(學)이 되고, 미학의 핵심개념으로서 칸트가 심미적 판단에 국한시킨 취미판단의 개념은 지혜에 입각하여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삶에 유익한 것을 즉각적으로 판단해내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니체에게 있어 예술은 문화의 한 영역이나 여가생활의 한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원을 인간의 실존 자체에 두고 있는 삶의 근원적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사유의 측면에서 아폴론적인 것이 로고스와 존재, 공간성과 불변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파토스와 생성, 시간성과 변화를 의미한다. 또한 아폴론적 진리가 논리적 형식에 있다면 디오니소스적 진리는 직관적 체험에 있다. 예술의 측면에서는 아폴론적인 것이 영원성을 공간적으로 조형화하여 고정시키려 하는 “아름다운 꿈”의 표상인 반면에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격렬한 감성의 흐름 속에서 영원성을 찰나적인 계기로서 체험하는 “고통의 도취”를 표현한다. 미학에 있어 아폴론적인 것이 형식과 미의 범주를 대변한다고 하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질료와 숭고의 범주를 대변한다. 한마디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자연과 실존의 진실을 표현하고 있다면 아폴론적인 것은 그것을 미적 가상을 통해 이상화하여 보여준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니체의 이러한 인식이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존재론적 위상이 격하된 예술적 가상의 세계를 복권시키려는 데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행복의 섬에서’라는 장에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시인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한다”고 말함으로써 소크라테스 이래의 예술관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는 ‘시인들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도 시인이다.” 이러한 반어적 발언이 의미하는 바는 이 장의 첫 구절에서 확인된다. “내가 육체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된 이래로 내게 정신은 단지 유령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든 ‘불멸의 것’ - 그것은 단지 비유에 불과하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의 서양철학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겨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를 통해 니체는 정신적인 이데아의 세계가 참된 실체이고 육체적인 감각의 세계는 단지 가상에 불과하다는 플라톤 이래의 형이상학을 전복시켜 놓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감각적 질료와 생성의 세계가 실존의 적나라한 진실이고 아폴론적인 정신적 형식과 존재의 세계는 가상이라고 본 <비극의 탄생>의 입장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니체에게 있어서 아폴론적 가상은 단지 부정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을 견뎌내게 해주고 허망한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오로지 미학적 현상으로서만이 실존과 세계가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존재의 중심이 저편에서 이편으로 이전되고, 인간의 실존과 세계를 정당화해주는 역할이 신학과 철학에서 이제 미학과 예술로 넘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니체사상의 이른바 “예술가-형이상학(Artisten-Metaphysik)”과 “미학적 변신론(둺thetische Theodizee)”의 의미이다.


인간의 실존과 세계를 미학적으로 긍정한다는 것은 기존의 형이상학을 전복하는 것인 동시에 진지한 이론적 학문을 ‘즐거운 학문(la gaya scienza)’으로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니체가 말하는 ‘학문’이란 부제에 명시된 “la gaya scienza”라는 어원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근대적 의미에서의 엄격한 학문이 아니라 트루바두르의 음유시인의 전통과 연관된 시작법(詩作法)을 가리킨다. 이것을 통해 니체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노래하는 문학으로, 정신을 지향하는 ‘북국’이 아니라 감각적 삶을 향유하는 ‘남국’으로 가치의 중심을 옮겨놓고 있는 것이다. 니체가 ‘신의 죽음’으로 인해 주인이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니힐리즘과 데카당스에 몸을 맡기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유로이 창조해나가는 ‘예술가’가 되라고 했던 것이나, 계율에 인간을 묶어놓으려 하는 기독교의 노예도덕에 대해 싸움을 벌였던 것, 그리고 지금과 동일한 삶이 영원을 두고 반복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긍정할 수 있도록 ‘네 운명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도 모두 삶과 세계에 대한 그러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내면의 파토스를 깨워 자신을 찾아내기


니체가 현실 앞에서 지극히 무력한 예술의 기치 하에 이성, 진보, 보편사의 이념 등 과학기술문명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들과 맞서 싸웠던 것은 도구적 연관관계에 함몰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인간 내면의 파토스뿐이라는 것을 직시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물질화와 관료화에 저항하고 그 경직성을 교정하려는 진지한 시도들이 거듭 니체를 자신들의 선구자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하지만 니체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은 항상 그의 사상과의 긴장된 대결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니체가 그의 아포리즘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가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너 자신을 찾아라” 단, 한 마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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