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환 /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자본주의의 겨울나기 : ①수정케인즈주의의 귀환

글 싣는 순서: ①수정케인즈주의의 귀환 ②지금 왜, 칼 폴라니? ③대안경제체제는 어디인가 ④한국정부의 역할 ⑤고용창출의 해법

최근 개도국을 중심으로 경제 사정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경제는 작은 위기로도 휘청일 수 있는 불안정한 자본주의의 겨울을 맞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살피고 대안경제의 기틀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케인즈가 활동했던 20세기 초반은 독점자본이 시장을 지배했고, 금융이 발달하여 투자와 투기가 과열되다가 갑자기 위축되기 쉬운 시대였다. 또 노동자들의 교섭력이 약하여 소득분배 불평등이 심해졌는데 예컨대 대공황 직전인 1927년 미국에서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 가운데 50%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본주의 구조변동으로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여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케인즈가 자본주의의 구원자로 등장한다.

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
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

    대공황과 20%를 웃도는 대량실업을 두고 전통적인 고전 경제학파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번영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업자들이 더 낮은 임금으로도 일하려고만 한다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고, 기업가는 상품가격을 내리면 매출액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즈는 아무리 불황이더라도 임금 인하로 실업을 해소할 수 없으며, 실업의 원인을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에 돌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실업과 불황의 원인을 유효수요(effective demand)의 부족 때문이라고 보고 그 유명한 ‘저축의 역설’을 말했다. 유효수요의 이론은 “공급은 수요에 순응한다”는 것이고, 저축의 역설은 저축이 개인적으로는 미덕이지만 소비를 위축시키고, 투자로 연결되지 않으면 수요가 위축되어 결과적으로 산출과 고용이 감소된다는 이론이다.
   이에 케인즈는 공황의 대책으로 확장적 재정 금융정책을 제시했다. 민간의 투자가 부진하면 통화 발행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추어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케인즈는 민간투자를 좌우하는 것은 이자율보다는 관습과 기업가의 기대이윤심리 같은 불확실성이라고 봤기 때문에 정부가 적자재정을 감수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직접적 수요증대정책이 효과가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마중물을 부어야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고, 민간투자 증가가 유발되어 완전고용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공황 이후에 세계 각국은 모두 케인즈 경제이론과 정책을 채택했고 케인즈 경제학은 전후 1950~60년대의 장기 호황에 기여하게 된다.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의의와 한계

   장기호황에는 전후 복구 수요의 증가와 함께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협력에 의한 복지국가의 확립이라는 요인도 작용했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소득분배의 개선이 투자재원인 저축을 감소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케인즈는 유효수요의 주요 원천인 소비증가를 효과적으로 유발하려면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으로부터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으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194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는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30~35%를 차지할 정도로 재분배가 이루어져 ‘대압착시대’로 불린다. 또한 케인즈의 경제정책은 정부 지출의 증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등을 포함하고 있어서 일시적으로나마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은 사회민주주의의 발달을 촉진했다. 케인즈 이후 선진국은 보건과 교육, 실업수당과 노후연금,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부조 등 사회복지 지출을 많이 하는 복지국가를 의미했다.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 계급과 서민들의 투쟁과 사회주의와의 체제경쟁의 산물이지만 자본가 계급도 일정한도 내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사회보장제도는 자본가 계급 측에서 볼 때 세금 부담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개별 자본가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보건과 교육 등을 국가가 담당하게 됨으로써 노동력의 질적 향상과 노동인구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비 지출이 자본가 계급 이윤의 안정적 확보에 공헌하지 못한다면 자본가 계급은 사회복지비 지출을 삭감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고도 성장기를 지나 1970년대 초에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병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을 때 케인즈주의 경제학은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통화 공급을 늘려도 기업의 투자는 부진했고 물가상승만 유발됐다. 영국 노동당과 각국 사회민주당 정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했지만 노동자들은 실질임금의 저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케인즈 경제학의 약점은 투자를 자본가가 주도하는 것을 당연하게 보고, 정부는 이것을 간접적으로 조절하거나 보완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여긴 데 있다. 이 틈을 타고 자본가들이 반격을 해왔다. 스태그플레이션 극복책으로 물가인상을 억제하고 민간투자를 증대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본가계급의 세금 부담을 낮추고 독점과 금융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며, 복지지출을 축소하고 통화발행을 엄격하게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화주의, 공급주도 경제학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노선은 불평등과 금융 불안정을 심화시켰고 결국 2007년부터 시작되는 세계경제위기를 초래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케인즈 경제학이 주목받고 있다. 

여전히 유효한 수정케인즈주의

   오늘날 케인즈 경제학은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으로 대표된다.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유효수요의 원리가 단기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현 경제의 불확실성, 투자의 불안정성, 소득분배 악화 경향을 강조한다. 대표적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자인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시장이 정부 간섭 없이 내버려둬도 저절로 균형으로 향해 간다는 효율적 시장이론은 금융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대신 민스키는 호황기에는 투기적 낙관론이 일어나고 불황이 시작되어 차입거품이 터지면 은행이 건전한 기업에 대해서도 자금을 옥죄어 경제를 더욱 위축시킨다는, ‘금융불안정성 이론’을 내놓았다. 이들에 따르면 경제는 항상 불확실성 속에서 불균형 상태로 움직인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비해 화폐와 금융의 역할은 중시되지만 금융은 투기를 유발해 또 다른 불안정 요인이 된다. 또한 자본가들의 투자 결정은 관습과 ‘동물적 충동’에 의존하므로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며 이것이 불안정한 경기변동을 초래하여 이로인한 소득분배의 악화가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현재 경제위기의 원인이 투자의 부족, 소비 위축 등 유효수요 부족과 금융불안정 때문이라면 케인즈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케인즈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불확실성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케인즈가 주장하는 ‘투자의 사회화’는 민간부문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투자 활동을 하도록 총수요를 유지, 확대하는 정책이다.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를 완화하려면 기준금리의 인하와 같은 긴급 금융대책이 불가피하다. 금융시장 혼란으로 인해 발생한 실물경제의 위축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지출 확대와 소득세 인하, 증권거래세 인하와 같은 경기부양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경기부양 정책 중에서도 소득세 인하나 양도세 중과 폐지 등은 정책효과가 적고 경제적 불평등만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정리해고와 임금인하 또한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소비성향이 높은 중산층 이하의 소득을 보전해 줄 세제개편이나 복지재정 지출을 확대해 소비 진작을 통한 수요를 확대하고 금융규제를 강화해 금융안정성을 향상시키는 한편 대외 외환위기를 억제해야 한다. 자본시장 거래에도 은행 규제에 버금가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무분별한 대외개방에 대해서도 단기 자본유출입에 따르는 위험을 관리할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케인즈주의는 과잉생산과 과잉투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반복되는 경제위기를 막으려면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에 기업과 금융의 통제를 결합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와 채권자, 협력업체, 정부 대표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방안이나 노동자 기금을 조성해서 주요 기업의 사회적 소유를 모색할 수 있다. 금융기관을 모두 국유화하는 등의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할 필요도 있다. 재정민주주의와 금융민주주의, 기업민주주의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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