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욱 /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얼마 전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조직 축소를 강행했다. 개정된 ‘국가인권위원회와 그 소속기관 직제령’(이하 직제령)에 따르면 인권위의 직원은 208명에서 164명으로 감축된다. 이는 20% 이상의 급격한 축소이며, 인권위가 처음 생길 당시 180명보다도 훨씬 적은 숫자이다. 정부는 국가기관 전체의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특별히 통폐합되거나 업무가 이관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대폭 감축된 기관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정부가 인권위의 조직을 일방적으로 축소한 행위 자체가 문제이다.
 


인권위의 독립성 전제돼야


인권위가 과연 행정부서의 하나인가? 정부가 저렇게 조직 축소를 강행한 것은 인권위를 행정부서의 하나로 취급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독립기구다. 인권위가 독립기구라는 사실은 그 설치근거법에 소속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 인권위는 헌법과 국제법에 따른 기구로서 국가권력의 어느 한 부문에 부속시킬 수 없다는 점, 인권위 출범 당시 입법과정에서 인권위의 독립성은 가장 핵심적인 원리로 입안되었다는 점 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권위의 독립성은 현 정부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에서 인권위의 대통령직속기구화를 제안한 바 있는데, 이는 인권위의 독립기구성을 전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국내외의 강한 비판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데 정부는 어떻게 인권위 조직을 일방적으로 감축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직제령이 대통령령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하 인권위법) 제18조(위원회의 조직과 운영)에는 “이 법에 규정된 사항 외에 위원회의 조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라고 규정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이 조항을 내세워 인권위는 업무상으로는 독립이지만, 조직상으로는 독립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직업무가 업무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닐까? 또한 그 조직을 행정부에 전적으로 맡긴 인권위가 독립적일 수 있다는 발상은 기이할 따름이다.


조직에 관한 규율을 대통령령으로 한 것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전제로 하고 그 범위 내에서 세부적인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자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직제에 관한 대통령령은 법규명령으로서 모법인 인권위법의 위임에 의하여 그리고 그 집행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모법을 넘거나 모법을 침해하는 법규명령은 그 자체로 불법적이다.
직제에 관한 규율을 대통령령으로 하지 않고, 아예 인권위 자체 규칙으로 하면 좋았을 것이다. 이는 인권위에 관한 국제규범의 요구사항이기도 하고 실제로 인권위 출범 당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러한 입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인권위는 정부 및 정치권에서 환영받는 기구가 아니었다. 당시 정부는 인권위를 법무부 산하의 기구 혹은 법무부의 감독에 따르는 단체로 만들려고 집요하게 시도하였다. 다른 권력기구들도 인권위의 출범을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인권위의 독립성은 인사, 예산, 규칙제정권 등에서 애초에 목표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는 차원에서 타협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타협은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견제일지언정 그것의 부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권위의 독립성은 인권위의 생명이자 인권위법의 근본정신이기 때문이다. 직제령에 관한 타협에서도 인권위는 비록 자체적인 규칙제정권은 부여받지 못하였지만, 대통령령 입안과 발의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인권위법 제6조 제4항에서는 위원장의 직무로서, “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할 수 있으며, 그 소관사무에 관하여 국무총리에게 의안(이 법의 시행에 관한 대통령령안을 포함한다)의 제출을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법 부칙 제1조 제3항은 “위원장은 국무총리에게 이 법의 시행에 관한 대통령령안의 제출을 건의할 수 있다”고 그 점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직제령의 입안·발의권과 심사·제정권이 인권위와 정부 사이에 분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초의 직제령 제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수차에 걸친 개정과정이 모두 그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되었다. 인권위의 조직권한은 최대한 존중되었으나 다만, 그에 대하여 정부가 수정·보충하는 권한만을 행사해왔던 것이다. 인권위가 새로 만들어진 작은 조직이며 직제 조직과 그 규칙제정 경험이 전무한 상태이고 또 그에 대한 전문 인력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이는 실용적인 방안이었을 수도 있다.
 


인권마저 ‘구조조정’의 대상인가


사실 모든 독립기구들이 무소불위의 기관은 아니다. 어떤 국가기구도 그 권한 오남용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따라서 국가기구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국민적 감시와 통제는 민주적 조직원리의 핵심이다. 인권위의 직제에 대하여 정부에 최종권한을 준 것은 그러한 차원에서의 행정적 견제장치라고 볼 수도 있다. 인권위 조직구성에서 행정절차의 민주성과 대표성 및 국민참여의 원리를 반영하자는 취지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번 직제령 개정에서 정부가 인권위의 조직을 장악하고 형해화(形骸化)하는 통로로 악용되었다. 정부는 인권위의 입안·발의권을 완전히 무시하였으며, 민주적인 법령제정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정부는 인권위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을 범하고, 자신의 고유한 권한을 오남용하여 인권위를 정부의 일개 산하 위원회로 격하시켜 버린 것이다.
이러한 인권위의 현실은 우리의 인권 상황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 정부 들어 우리 사회 인권이 전반적으로 후퇴하는 가운데 인권위도 시련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권은 전(前)국가적이며, 초(超)국가적인 성격을 띤다. 인권은 국가권력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자, 그 오남용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설사 국민적 대표성이 인정되는 정부라고 하더라도 인권에 대한 안이한 태도는 금물이며, 인권위의 무소속성과 독립성은 그 제도적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현 정부의 인권에 대한 태도를 다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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