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연구도용 사건 진단

대학원 사회에서는 여전히 교수가 지도학생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학생이 제출한 논문을 교수가 각색해 자신의 논문으로 발표하거나, 원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번역을 시킨 후 버젓이 자신의 이름으로 역서를 출판하는 교수도 있다. 학생을 ‘노동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부 교수들의 태도는 오랜 ‘도제관계’의 악습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최근 본교에서 연구자의 윤리의식 부재와 교수의 직권 남용을 드러내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다. 교수가 학생의 논문을 도용해 학회에 투고했다가 해당 학생의 반발로 논문게재를 철회한 경우다.(※현재 교무처에서 진상조사 중이므로 당사자와 학과명을 이니셜로 처리한다.)
 


교내 연구도용 사건의 전말

 


A학과 P교수의 연구조교였던 H원우(박사과정 휴학 중)는 2008년 5월, P교수로부터 “연구조교는 원래 외부에 논문 한 편을 발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석사논문을 학회제출 논문형식으로 요약할 것을 요구받았다. P교수는 <어문연구>지에 H원우의 석사논문 요약본을 투고할 것이라고 통보했고, H원우는 본인의 이름으로 논문을 투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에 H원우는 ‘자기표절’이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P교수는 ‘괜찮다’고 답했다. 요약본을 전달한 후 10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난 3월, 학회 측에서 P교수에게 1차 논문심사서를 보내왔고, P교수는 H원우에게 자신은 이 논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며 24시간 내에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H원우는 논문을 수정하던 중 논문심사서에서 “‘차범석 <산불>의 공간 연구’(H, 중앙대 석사학위논문, 2005)처럼 유사한 주제의 선행연구에 대한 검토가 미흡한 점은 수정·보완되어야 한다”는 심사평을 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P교수가 논문의 제1저자로 돼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단지 자신의 논문을 투고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던 H원우는 석사논문의 지도교수가 아닌데다 논문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 P교수가 제1저자로 돼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논문게재를 철회해줄 것을 요청해 결국 게재되지 않았다. ‘어문연구학회’의 총무이사는 “저자인 P교수가 직접 취소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수락했을 뿐 상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H원우가 전정서를 접수함에 따라 이 사건의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상준 교무처장(물리학과 교수)은 비록 논문이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연구도용’이란 중대한 문제로 인식해야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게재철회 이후에도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한 폭력이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H원우는 P교수에게 논문게재가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한 분노가 담긴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받았다. 이메일에는 “너 못된 애로구나”, “이따위로 X랄이면 뭐 하러 학교에 다녀?”, “학교에 얼씬거리지 마라”, “장학금 받은 돈 게워내” 등의 폭언이 담겨 있었다. 인격적인 모독뿐 아니라 자퇴요구와 장학금 반납 요구, 교수회의 회부 등 학생의 입장에서 위협을 느낄만한 언급도 있었다.
이에 H원우는 “학생의 연구성과물이 착취당하는 부조리한 관행의 재발을 막고, 본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에 대한 정당방위라는 취지에서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상준 교무처장은 사건의 조사상황에 대해, “4월 20일 P교수와 면담을 했고, P교수가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했다”며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곧 조치를 취할 것이며, 당사자들이 합의할 경우 정상참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원의 징계문제는 “교원인사권을 가진 재단이 결정할 문제”이므로, “곧 정식보고를 올려 징계위원회의 소집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P교수는 “학생이 주장하는 바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을 인정한다. 징계위원회가 열리면 그때 소명자료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소통과정에서 격앙된 표현을 쓴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징계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본지에 표명했다. 자퇴요구나 장학금 반환 문제에 대해서도 “학생의 태도에 화가 나서 나온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연구윤리법 세부규정 확립 시급해


학교당국은 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비단 P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수와 학생이 연구자로서 대등한 관계가 아닌 종속관계로 맺어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학문풍토에서는 공공연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해당 교수를 징계하는 차원을 넘어서 제도적인 방지책을 함께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상준 교무처장에 따르면, 연구지원처에서 올해 안으로 세부적인 ‘연구윤리지침’을 만든다고 한다. 논문중복 게재, 연구도용, 자기표절 등 사안별로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징계 근거규정을 만들 예정이다.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학교 본부 측의 발빠른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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