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만 / 이화여대 독문과 교수



폭력은 모두 악인가. 모든 폭력은 비난받아야 하는가. 폭력의 20세기를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도처에 만연한 폭력을 목격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다양한 폭력담론을 비교·분석해 봄으로써 폭력의 본질과 영향, 그 메커니즘을 고찰해보고 그것의 정당성과 한계, 대안에 대해 고민해본다. <편집자주>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의 지식인이든 당대 ‘정치’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실정치에 늘 거리를 두며 문화ㆍ종교ㆍ예술에 관심을 두었던 초기 벤야민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을 피해 도주해 있던 스위스에서 벤야민은 블로흐가 갓 발간한 저서 <유토피아의 정신>을 두고 그와 토론하는가 하면,  제국주의 전쟁과 사회주의의 정치, 러시아 혁명 등을 경험한 여러 지식인들의 담론을 접하며 정치에 대한 시각을 형성하게 된다. 이 때 벤야민은 정치에 대한 저술을 구상하고 여러 글을 썼지만 대부분 실종되고 1921년에 쓴 에세이 ‘폭력비판을 위하여’만 남았다.
우리는 흔히 형이상학적·신학적 사유에 정향한 초기 벤야민과 유물론적 사유에 정향한 후기 벤야민을 구별하면서 그 두 단계의 단절과 지속관계를 논한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정치를 매개로 그 두 단계가 연속의 관계에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신학과 정치는 벤야민에게는 처음부터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의 마지막 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와 19세기 원사(元史)를 다룬 <파사주> 프로젝트의 중심 테제는 “정치가 역사에 우선한다”로 요약된다. 정치는 벤야민의 사상이 전개되면서 새로 발견돼 덧붙여진 차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폭력비판 에세이에 표명된 초기 벤야민의 사상은 후기에 세분화되고 성숙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법과 정치의 폭력적ㆍ신화적 기원


‘폭력비판을 위하여’는 겉보기에 법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벤야민의 초기 사상의 모티프들이 응축되어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글에는 벤야민의 다른 글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법, 정의, 언어, 신화, 운명, 종교와 같은 모티프들이 ‘정치’의 틀 안에서 함께 어우러져 있다.
독일어 ‘Gewalt’는 힘ㆍ폭력ㆍ권력ㆍ권능ㆍ무력과 같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벤야민은 ‘폭력비판을 위하여’에서 윤리적 상황과 관련된 폭력만을 다룬다. 즉 그는 화산폭발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으로서의 폭력은 고찰대상에서 배제한다. 폭력이 윤리적 현상으로 파악될 때, 그것은 곧 법과 그 법이 자신의 근거로서 표방하는 ‘정의’와 연관된다는 뜻이다. 벤야민은 여기서 폭력현상을 법적 폭력과 연관해 비판적 의도로 고찰한다. 사람들은 폭력과 법의 관계를 고찰할 때 상식적으로 폭력을 이성적 정치의 한계에 있는 것, 그리고 법이 그 이성적 정치의 정당한 출발점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 상식을 뒤집어 폭력을 정치의 근원이자 토대로 보고, 법은 정치의 종점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세상의 폭력을 제어하는 것이 법이 아니라 , 오히려 법의 궁극적이고 내재적인 목적은 폭력 내지 권력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벤야민이 이러한 통찰을 하게 된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등 일련의 사건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폭력과의 대면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군국주의 국가가 전시(戰時)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경찰조직을 통해 시민 개개인에게 행사하는 합법적 폭력, 자본주의적 근대화과정이 빚어내는 소외와 물화과정, 그에 대항하여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총파업’ 내지 혁명, 전쟁을 비롯한 폭력 일반에 추상적으로 반대하는 반군국주의적이고 평화주의적인 담론, 라디오를 비롯한 새로운 매체권력의 등장과 이를 이용하는 지배권력, 갓 태어난 공화국의 의회민주주의가 보여 주는 난맥상과 무력함, 사형제도에 대한 공적인 토론 등, 한 마디로 양차 대전 사이의 유럽은 ‘폭력의 세기’로 규정해도 좋을 만큼 폭력이 일상적인  현상이자 주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지식인들이 정치와 법과 폭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저마다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정치철학을 전개하게 되었던 것이다.
‘폭력비판을 위하여’에서 벤야민이 주장하는 핵심 테제는 “폭력에 대한 비판은 폭력의 역사에 대한 철학이다”로 요약된다. 폭력에 대한 역사철학적 고찰을 통해 그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 시대의 법과 폭력이 행사되고 적용되는 기준과 영역에 대해 분석ㆍ고찰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들 외부에 있는 입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상을 초월하는 이 외부적 입장을 요청하면서 벤야민이 제시하는 가정은, 오늘날 폭력을 다룰 때 결정적인 척도와 구별은 한결같이 법제도에서 유래하고 있고, 이 법제도는 또한 ‘수단과 목적의 도식’에 갇혀있다는 점이다.
이 테제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법제도와 폭력을 세부적으로 천착해 들어간다. 벤야민은 당시 폭력은 법의 형태로만 주제화될 수 있으며, 또한 법은 그 스스로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권력의 사용에 의존해 있다는 점을 밝히려 한다. 왜냐하면 법의 제도화(제정, 설정)와 재생산(보존)은 폭력의 위협이나 행사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의 관점에서 보면, 이 테제는 이 시대의 폭력적 행위들은 법기능의 의미에서만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법의 특성은 바로 엄밀하게 목적과 수단의 도식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법이 지배하는 한 폭력은 제거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를 종식시킬 새 시대의 특징은 이 법을 무효화시키는 데서 가능해진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폭력은 ‘성스러운’, 또는 ‘순수한’ 형태를 띤다. 벤야민에 따르면 모든 법적 폭력은 개인을 운명의 사슬에 엮어 넣는 ‘신화적’ 폭력의 형태를 띠며, 또 법설정(제정)적 폭력과 법보존적 폭력으로 나뉜다. 벤야민은 그 둘을 ‘통제하는 폭력’과 ‘관리된 폭력’으로, 그리고 그에 맞서는 ‘신적’ 폭력은 ‘베풀어 다스리는 폭력’으로 특징짓는다.

법적 폭력을 무효화시키는 신적 폭력


요약하자면 벤야민은 법과 폭력과 정의의 관계를 법철학적으로 성찰하는 차원을 넘어, 현실을 변화시킬 힘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근본적 사유에 바탕을 두고 폭력비판 에세이를 썼다. 이 에세이에서 벤야민은 법실증주의의 틀 내에서 법과 폭력의 관계에 대한 내재적 성찰뿐만 아니라, 폭력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주지 못하는 그 내재적 고리를 끊기 위해 순수 폭력, 즉 신적 폭력에 대한 초월적이고 근본적인 성찰을 전개한다. 법의 폭력적 기원에 대한 벤야민의 급진적 성찰은 이후 데리다(<법의 힘>)나 아감벤(<호모 사케르>)과 같은 사상가들의 정치철학적 성찰에 영감을 주었다.
벤야민의 이 글은 법과 폭력의 관계에 대한 역사철학적 성찰에 대한 ‘프롤레고메나’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오늘날의 현실에 직접 적용하기에는 무리한 측면이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법이 개인과 집단에 가하는 가시적ㆍ비가시적 형태의 여러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벤야민처럼 법의 폭력적 기원에 대해 통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역으로 실정법적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이 더 필요한 측면이 있음이 분명하다. 예컨대 소수자들의 투쟁에서는 법의 폭력성에 대한 추상적 비판보다 오히려 법적 인정을 받는 일이 더 시급하다. 그러나 벤야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는 법과 폭력의 문제는 법내재적 차원의 논의에서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초월적인 성찰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법과 폭력의 문제는 오로지 법적 차원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똑같은 순환론에 묶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법과 폭력/권력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벤야민의 이러한 성찰들을 참조함으로써 오늘날 현실에서 법ㆍ권력ㆍ폭력ㆍ대항폭력의 문제가 다층적으로 엉켜 있는 실제 상황들(‘테러와의 전쟁’, 촛불집회, 묻지마 범죄, 용산참사 등)에 접근하는 데 보다 넓은 시야와 지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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