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문화
번역을 통한 지식의 민주화와 대중화제갈명원과 사마창은의 批評計 ③번역이 곧 반역
한우리 편집위원  |  dkgkaa@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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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호]
승인 2009.04.19  11: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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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기반이 되는 번역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로 한국의 근대학문은 번역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다보니 번역과 관련된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이번호에는 번역이 갖는 의의와 한국 번역물 출판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오창은(이하 오) : 최근에 번역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었어요.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랑시에르 논문의 번역을 두고 인터넷 논객 로쟈가 문제제기를 한 거죠. 그런데 진태원씨가 좋은 선례로 남을만한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오역을 인정하고, 로쟈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독자에게는 사과를 했어요. 뿐만 아니라 정오표를 만들어서 인터넷에 뿌린 거예요. 물론 3쇄부터는 바로 잡겠다는 약속을 했고요.
이명원(이하 이)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도 얼마 전에 김현의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를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는데, 그 책에서 김현은 김윤식의 <소설의 이론>이라는 지라르 책의 번역을 문제 삼고 있더군요. 일단 김윤식 교수가 지라르의 프랑스어 저작이 아닌, 영문판 저작을 참고로 번역했고 게다가 발췌번역을 해놓은 터라 아주 심각한 오역이 발생했다는 비판이었어요. 그러나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김현의 바슐라르 번역에 대해 동료교수인 불문과의 곽광수 교수가 비판한 것입니다. 김현의 번역 역시 오역 투성이라고 말이지요.
오 : 번역과 관련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죠.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나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 등이 오역 논의가 전개된 바 있고, 2004년에는 자크 데리다의 <불량배들>이, 2003년에는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 논쟁에 휩싸였고요. 질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 혹은 <천의 고원>도 번역과 관련된 대표적인 논쟁 사례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런 논쟁이 개별적 사례로 갑론을박하는 형태였고, 번역 문화 전체의 논의로 확산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 :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 상의 근본적인 문제―가령 번역불가능성의 문제―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번역’작업의 힘든 과정이나 이를 연구업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역과 같이 아주 심각한 문제가 구조적으로 양산되는 겁니다. 대학원생시절에 아르바이트 삼아 번역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런 번역자 취급 방식이 사실 더 큰 문제에요. 제가 <악기사전>을 번역했다니까요. 글쎄.
오 : 하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책을 번역하면서 충분한 대우는 받으셨어요?
이 : 천만에요. 역자도 딴 이름으로 나가고(아마 감수자였겠죠), 번역료 역시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책이 제대로 출간되었는지도 확인해 본 바가 없고요.
오 : 그렇군요. 이명원 선생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문구의 <관촌수필>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1960~70년대 풍경인데, 조그만 쪽방에 앉은 두세 명의 번역자가 번역이라고 하는 것이 일종의 사기행위예요. 이미 번역되어 있는 책을 윤문해서는 새로 번역한 것인양 장사를 해 먹는 거죠. 한국의 번역문화는 이러한 풍토 속에서 출판시장으로부터 박대 받으며 성장해 온 것 같아요. 번역이 언어의 문제이고, 두 개의 언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오한 지적 사유라는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어요. 출판사는 인부 부리듯이 번역자를 다루려고 하고요.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 : 언젠가 영미문학연구회에서 번역된 영미작품의 번역수준을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1950년대의 최초 번역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다 최초번역본을 토대로 베껴쓴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요는 출판학술계가 번역을 무슨 덤핑사업 취급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도대체 전문학자가 그 힘든 작업을 하면 뭐합니까. 소모되는 것은 시간뿐인데. 그런 점에서 보면 발터 벤야민 전집을 십수 년 동안 번역하고 있는 이화여대 최성만 교수는 그야말로 존경할 만한 분이죠.
오 : 교수업적 평가나 임용에서도 번역은 전공논문, 단행본 저술, 학술활동과 창작 및 공연, 지적재산권 다음에 위치해 있는 실정이죠.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상업적 번역만 성행하고 의미 있는 번역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전문학술서 및 고전에 대한 엄밀한 번역을 ‘박사학위’로 인정한다고 해요. 가야트리 스피박은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한 번역과 주석 및 해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어요. 한국에서도 미국ㆍ일본 등과 같이 주목할만한 학술적 번역을 높게 평가하는 학술문화적 풍토가 조성돼야 해요. 그래서 한국 학문의 자생성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 이러한 사실과 함께 ‘번역어’의 성립에 깃든 근본적인 어려움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가령 부르디외의 ‘habitus’같은 개념은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습속’ 정도로 할 수도 있지만, 그랬을 때 이 개념의 생성적인 의미를 포함시킬 수가 없죠. 네그리와 하트의 ‘multitude’의 경우도 지금은 일반적으로 ‘다중’이라고 사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확정적인 것은 아니잖아요. 사실 오역의 문제에서 이런 개념의 근본적인 번역불가능성의 문제가 중요한 논점을 형성하는 게 아닐까요.
오 : 한 연구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 번역의 문제는 ‘정확성과 가독성’에만 치우쳐있다는 것이라며 번역의 창조성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상투적인 번역을 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번역어를 개발한다든지 닫힌 언어가 아닌 열린 언어를 통해 의미를 해방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요.
이 : 사실 번역자들은 새로운 표현을 창안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언어체계 바깥의 언어를 체계 안의 언어로 치환시키는 매우 고달픈 작업이지요. 그러면서도 원저작의 언어에 깃들어 있는 의미론적ㆍ뉘앙스적 퇴적물을 옮겨오는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저작을 번역해도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한국어 번역어들이 다 상이합니다. 가령 들뢰즈 번역을 둘러싼 차이들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어떻게 표준번역어를 설정하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 : 그게 바로 근대학문 체계의 핵심인 ‘개념사’와 연관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한국적 개념의 창출이나, 한국 학문의 토대라는 것이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번역’이라는 화두를 통해서도 사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 학계는 전반적으로 원전ㆍ원어 중심주의가 무소불위의 권능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엄연히 번역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 인용이 권장되고 있고 심지어 몇몇 교수ㆍ연구자들은 원서를 번역해 놓고도 학문적 공유를 위해 출간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적으로 소유한 채 자신의 학문적 권위를 시위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이죠. 번역의 가치보다 원전의 가치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후진 학문사회예요. 한국 학문의 종속적 풍토가 ‘번역의 가치 재설정’을 통해 극복되지 않는 한 관성화된 수입 학문의 유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 번역작업은 지식의 민주화와 대중화의 토대입니다. 종교혁명 당시 자국어 성경번역도 그런 성격을 갖고 있었죠. 학자들 역시 자신의 번역행위가 학문적 축적의 중요한 매개고리역할을 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식의 독점이 아니라, 그것을 접근하기 힘든 대중들에게 개방하는 일에 번역의 중심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오 : 그래요. 그런 의미에서 번역에 대한 연구자들의 검증시스템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앞에서 이명원 선생께서 언급한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가 그 좋은 예인 것 같아요. 영미문학연구회에서 이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는데, 이러한 학계의 검증작업이 우리 번역 문화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이 : ‘번역학’이나 ‘번역론’과 같은 학문적 검토도 필요합니다. 최근에 몇몇 대학에 ‘번역학’ 전공이 개설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동시에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전문번역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상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구요. 또 우리가 끝없이 외국저작의 번역에 의존하는 반면, 우리 저작의 해외번역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는 한계에 대한 자각도 드는군요.
오 :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지요.
이 : 그래야겠군요. 사실 요즘 같은 때는 서로의 한국어도 번역이 안 되는 듯한 소통불능의 시대라는 생각도 듭니다.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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