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 /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발 경제위기가 심화시킨 자본주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전세계가 고심하고 있다. 국가별 경제회생을 위한 대안책을 살펴보고 그 실효성을 분석해 봄으로써 이것이 한국경제에 시사하는 점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일본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의 ‘일자리 나누기’

 

일본 역시 미국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작년 8월 이후 내놓고 있는 주요 위기극복 대책을 보면,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은 가급적 자제하면서 고용보험료 인하, 고용 안전장치의 강화, 중소기업 자금난 해결, 내수 자극을 위한 감세 등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것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대기업 건설회사의 시멘트를 팔아주기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을 감행하면서 ‘회색성장’ 기조를 고집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위기대책은 그 지속적인 실행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명분만큼은 서민들의 생활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감세정책은 신자유주의 정치그룹이 집권하고 있는 양국의 본질적인 공통점이기는 하다.


이 글에서는 ‘경제위기와 일본’이라는 주제 아래 위기극복과 관련한 일본정부의 대응보다는 기업의 비정규직 해고와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지금 일본에서 위기극복이라는 명분아래 가장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노동조합 중앙조직의 태도에 대해 비난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 반해, 특정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의 대응과 제안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 전체가 공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제위기 국면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내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동일한 상황을 맞았지만 사회적 합의에 나서는 데는 너무나도 인색한 우리에게 실효성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게이단렌, 비정규직 무차별 해고 후의 ‘일자리 나누기’


일본의 경영자 단체인 게이단렌은 위기극복을 위한 대책으로 종업원들의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임금을 낮추는 ‘일자리 나누기’를 주창했다. 미타라이 게이단렌 회장은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일자리 나누기’로 대응하지 않으면 근로자의 상당수가 해고될 수밖에 없고, 이는 국내 수요를 크게 줄여 실물경제를 더욱 위축시킨다며 근로자들의 노동형태를 개선하기 위해 메스를 잡았다. 일본의 대기업 또한 이와 같은 움직임에 부응하며 근로자들의 ‘일자리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기업들의 위기 대응은 일의 순서가 바뀐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지난해 가을, 수만 명에 이르는 파견노동자들을 즉각 해고해 거리로 내몰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 이 순간에도 파견 계약 파기를 일삼고 있는 장본인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고용보호라는 우아한 명분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희한한 원맨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대기업들은 일의 순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양적으로 이미 과잉공급된 파견노동자를 계약 도중에라도 언제든지 해고시켜버리면, 올해 계약이 만료되는 약 24만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위한 정당화 과정이 불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 해고 문제를 수습하면서 경비삭감까지 가능한 ‘일자리 나누기’는 기업 입장에선 해고보다는 인간적인 처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단행할 이 인간적인(?) 사업의 대상 중 대부분은 연합(노동조합 중앙조직)계열 각사 노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중앙조직은 파견계약 파기가 급속하게 이뤄질 당시, 파견계약 파기의 대안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중앙조직은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이라는 조건을 수용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파견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냈어야 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노동자를 위기에 처하게 했고, 여론은 노동조합 중앙조직에 등을 돌렸다.


지난 2월 출장을 위해 교토를 방문했을 때 일본사회 전체는 ‘계약만료 파견노동자촌’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의 제안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이는 일본 정규직 노동조합 중앙조직의 대응 실패와 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보호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파견노동자촌’의 중앙사무국을 담당한 ‘전국 유니온’은 작년 12월에 개최되었던 ‘춘투를 위한 세미나’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공생을 위한 긴급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한 바 있다. 그 내용은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과 생활의 조화를 실현함과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규직 노동자를 일시해고하는 대신에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생산라인을 가동시켜 휴업에 대해서는 고용조정조성금으로 보상시키고자 한 것이다.


물론,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아닌 일시해고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점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그래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하는 방식의 혁명’을 염두에 둔 점만큼은 매우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일자리 나누기’의 정신은 ‘일을 사이좋게 나누어 갖는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의 자유시간을 사이좋게 나누어 갖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합의에 입각한 경제체계 추구


경제위기에 직면한 우리 정부와 재계도 앞으로 ‘일자리 나누기’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 재계도 내심 일본과 같은 ‘순서’를 추구했겠지만 규제완화를 해준다는 정부의 달콤한 유혹에 ‘일자리 나누기’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모처럼 재계가 제시하는 인간적인 제안이다. 이 제안이 고용확보를 위한 수단으로서 어떻게 현실화되어야 할 것인가를 ‘노(정규직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와 ‘사(대기업·중소기업·영세기업)’와 그리고 ‘정(정부·여당·야당)’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일본 국민들이 전적으로 공감하는 ‘파견노동자촌’이 추구했듯이, 사회적 합의에 입각한 지혜로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하는 방식에 혁명이 일어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보장된다면 그러한 경제체계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일 것이다. 심각한 위기 국면에서는 그 누구도 사회적 합의를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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