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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선거는 일단 ‘경선’이라는 점이 좋다. 양 후보가 경쟁을 벌일수록 일반 원우들은 후보들의 공약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들의 자질 또한 확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각각 ‘개혁’과 ‘보수’라는 명확한 개성을 지닌 두 후보 간 경쟁이라 확실한 대립각이 형성되어 일반 원우들은 간만에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투표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있다. 기호 1번은 있는데, 기호 2번이 없다는 것이다. 벽면에 부착된 포스터에서도 기호 1번 후보들은 검지를 치켜들고 있는데 반해, 기호 2번 후보들은 우두커니 서 있을 뿐, 묵묵부답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기호 2번 후보들이 ‘기호’를 포기했다고 한다. 기호 없는 선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기호 2번 후보들은 오히려 ‘도발’적이다.


실상 기호 1번이니 2번이니 하는 것들은 후보등록 순위에 따라 매겨지는 일련번호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후보자가 유치한 발상으로 자신의 일련번호를 당선 가능성과 관련짓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일반 원우의 입장에서는 그런 사소한 ‘번호 붙이기’가 의외로 중요하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명확하게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초등학교 반장 선거까지 각 후보에게 일련번호를 붙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식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원총회장 선거에서 이러한 상식적인 차원의 합의가 무시되고 있는 상황은 아무래도 의아하다.


기이한 상황을 연출한 특정 후보들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를 방치하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선관위는 명분상 선거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적절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임무를 방기한 채 특정 후보자의 기호 거부 행위를 빤히 지켜보고만 있다. 선관위의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가 선거 당일까지 이어진다면 결과적으로 선거인의 권리는 무시되고 특정 후보자만을 배려해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정 후보의 도발이 그대로 선관위의 원칙이 되어 투표용지에마저 기호가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선관위가 자신들의 임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러는 것이라면 그 미숙함을 안쓰럽게라도 여길 텐데, 선관위 구성원에 지난 30대 원총 회장과 부회장, 집행국장들이 포함돼있는 걸 보면 업무에 대한 무지에 원인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사태는 더 심각해 보인다.


모르고 지은 죄는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지은 죄는 호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공정하게 선거과정을 진행해야 할 선관위가 누가 보더라도 이상히 여길만한 특정 후보의 기행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관위의 태도는 죄질이 나쁘다. 이러한 선관위의 나쁜 태도에 엄히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나, 선관위를 감시하고 고발할 만한 별 다른 장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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