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문화
제갈명원과 사마창은의 批評計② 2009년 주목할만한 신인
한우리 편집위원  |  dkgkaa@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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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호]
승인 2009.03.25  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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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의 길이 ‘치욕의 길’이라는 험난한 현실에도 2009년, 여지없이 신춘문예는 열리고 신인들은 등단했다. 이번 대담에서는 시와 소설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신인들을 꼽아보고, 한국문단 등단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오창은(이하 오) 2009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인 민구의 ‘오늘은 달이 다 닳고’와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우성의 ‘무럭무럭 구덩이’라는 두 편의 시가 좋은 대비를 이루더군요. 민구의 시가 자연물을 대상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우성의 작품은 일종의 난해시 같아요. 민구의 시가 시적 주체, 바라보는 주체가 분명하다면, 이우성의 시는 그것을 모호하게 하는 자기만의 ‘상징’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최근 한국시의 흐름, 유행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명원(이하 이)그런데 그러한 자연은유를 대상으로 한 시적 경향은 신춘문예의 일종의 기본문법 아닐까요. 개성적인 사적 은유, 사적 상징을 보여주는 것. 저는 신춘문예 소설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토해 보았는데 과거에 비하면 하위문학에 속하는 경향, 이를테면 킬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흥미로웠어요. 소설의 혼합장르화랄까 하는 현상.
시와 소설에서 나타나는 비슷한 흐름으로 조그만 소재나 개인적 상징 같은 것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눈에 띱니다. 이를 ‘마니아 문학’의 탄생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오늘의 문학청년들이 체험보다는 선행하는 텍스트에 대한 독서와 모방을 통해 문학을 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어요. 소설의 경우 이채로운 정보들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고, 등장인물의 직업 역시 다채로워지고 있는데, 이게 다 독서행위의 결과이지요. 대신 살아있는 육성이랄까 체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만들어진 소설’이 대세지요. ‘정보조립소설’이라고 하면 어울리는 표현일까.
제가 주목하는 젊은 소설가 중 한 사람이 김사과입니다. 이 작가의 결기나 독기 같은 것이 작품 속에서 드러나기에 ‘문학하는 사람의 자세는 모름지기 이래야 돼’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만난 고영직 평론가가 김사과의 장편 <미나>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군요. 읽어내기가 대단히 힘들었다는 거예요. 소설 속 언어들이 ‘인공어’, ‘만들어진 언어’라는 거예요.
김사과의 소설은 ‘에고’가 매우 강렬하지요. 일종의 분열된 자아의 고백이어서, 소통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독백에 가까운 작품이죠.
에고나 고백적 서사의 측면에서 보면, 한유주의 소설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 문학계에서 작품의 소통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자폐적 독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두 작가보다는 윤고은이 훨씬 더 좋은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중력 증후군>같은 경우 자본주의적 일상에 대한 기묘한 알레고리적 풍자가 돋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가는 이야기성이 살아있고, 서사구조 역시 박진감 있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어요.
윤고은은 저도 주목하는 작가인데, 빠른 전개와 발랄한 언어 구사가 단편 스타일에 더 어울립니다. 그래서 그의 단편집에 조금 더 기대를 걸고 있어요.
사실 우리가 문단이나 평단에서 자주 논의되는 작가만 거론해서 그렇지, 제도 문단 바깥에서의 문학적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판타지, SF소설을 쓰는 동인 가운데 ‘거울’동인이 있어요. 이 친구들이 최근에 <앱솔루트 바디>나 <U, ROBOT>같은 단편 SF 소설을 출간했는데, 읽어보면 이른바 본격문학 바깥의 문학적 실험이 매우 치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요. 장르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역에서 발표되는 작품의 수준이 대단히 높아진 것 같아요. 실제로 이러한 장르문학의 진전이 문단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구요. 윤이형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게임 제작자 입장에서 현실을 낭만적으로 그려낸 <안개의 섬>같은 작품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작품의 성과도 본격문학 바깥의 문학적 실험이 서로 교접하면서 나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제 생각에는 오늘과 같은 방식의 신인 등단제도가 유효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출판계 일각에서는 등단제도와 무관하게 작품집을 출간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하는 신인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구요.
제가 신춘문예 등단 소설들을 분석해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등단하는가 하는 것이었는데요. 거기에는 세 가지 법칙이 있다고 봅니다. 문장들이 읽기 쉽고 속도감 있는 단문으로 시작되고, 작품의 전체 구조가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수미상관을 이루는 천칭구조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전문영역 종사자를 직업으로 내세우는 작품이 대세였고요. 이러한 등단의 법칙이 발견된다는 것은 일종의 패턴화된 작가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만약 제가 다시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면, 당선될 자신이 없어요. 그런 법칙도 불만스럽지만, 신춘문예에 무슨 일관된 심사의 잣대가 보이는 것 같지도 않거든요. 저도 몇 번 심사를 해보았지만, 쌓여있는 작품을 읽게 되는 상태의 컨디션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우연성의 힘도 커요. 한 인간이 어떻게 수백 편의 작품을 며칠 만에 본다는 겁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단의 문학제도에 성찰적 점검이 필요합니다. 등단제도라는 것 자체가 문학을 왜소화하는 경향이 있고, 제도 자체가 한국문학의 자유로운 상상력, 혹은 실험적 시도를 억압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문단이라는 제도 밖에서 문학적 성취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도야 다 한계가 있죠. 문제는 한국문단이 유독 제도를 강조한다는 거예요. 비평가 역시 마찬가지죠. 일단 제도적으로 공인된 작가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제도의 규율에 종속되어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문단문학’을 규탄하고 있는 비평가 조영일의 주장도 납득되는 측면이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제도를 싸잡아서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은 위험하지만요.
한 해에 주요 매체를 통해 대략 50명 정도의 신인소설가가 등단을 합니다. 그 중 20명 정도가 청탁을 받고 근근이 작가 생활을 영위하지요. 하지만 이 20명 중에서도 이른바 지속적으로 소설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2~3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신진작가들이 제도 속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더불어 제도가 작가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사실 저도 등단하고 한 6~7년 동안 놀았습니다. 문단에 선배가 있나, 학연이 있나. 내가 등단한 매체는 망했고 그러다보니 자연 고립된 셈이죠. 그런 와중에도 사과박스 두 상자 분의 글을 썼어요. 그런데 발표지면이 없는 겁니다. 군시절에 다 버렸어요. 이런 신인이 부지기수일 겁니다.
맞아요. 무조건 제도를 배타시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한국 문학제도는 무언가 오작동되고 있는 폐쇄적 형태를 띠고 있어요. 이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같은 것이 이뤄져야 합니다. 문학이 제도를 재생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좀 더 열린 대화와 소통을 위해 문학은 씌어지는 것이고, 그 속에서 사회적 상상력의 지평도 넓어질 수 있는데 말이죠.
신인작가들의 말인즉, 작품발표의 길이 치욕의 길이랍니다. 첫 작품집을 묶는 것이 본격적인 치욕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러니 비평가가 성실하게 작품을 읽고, 그것을 의미화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작가들 입장에서도 예술계의 보편적 냉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예술세계에 이류문학은 없습니다. 좋은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이 있다는 식의 냉혹함이 또 예술계를 살찌우는 것 역시 사실이지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평론가로서 약간의 부끄러움과 의무감을 느끼게 되네요. 저도 제도의 일부이니 그 부끄럼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지요. 시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열띤 논의였던 것 같아요.
사는 게 다 그렇게 쫓기는 군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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