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 동아사이언스 기자

미래의 세계는 작고 하얀 방입니다. 미래는 이제 10살, 작은 병실에서 살아온 시간도 딱 그만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면역력에 문제가 있어 병실 문지방을 넘어가지 못한 미래에게 병원 바깥세상은 머나먼 나라입니다. 미래는 먼 나라 얘기를 텔레비전과 컴퓨터로 보고 듣습니다. 그곳에서는 매일 새로운 싸움과 죽음, 그리고 조그만 탄생이 있습니다. 미래는 작은 자신의 세상이 조금은 지겹지만 바깥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웃으며 들어옵니다. 인공혈액, 사람이 만든 깨끗한 피를 몸속에 넣는다고 합니다. 수술이 성공하면 미래는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엄마는 기뻐하지만 미래는 무섭습니다. 곧 만나게 될 바깥세상, 그 커다랗고 어두운 공간이 너무나도 무서워 잠들 수가 없습니다. 미래는 이불을 꼭 쥐고 눈을 감습니다. 한 밤, 두 밤, 세 밤.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세어온 병실에서의 밤이 이제 곧 끝납니다.
 

미래는 어느새 하얗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작은 방의 문을 열었더니 그 앞에는 새하얀 빛이 비칩니다. 눈이 부신 미래는 눈을 꼬옥 감습니다. 주저하며 다시 눈을 뜨니 하얀 수평선을 향해 쭉 뻗은 길이 보입니다. 미래는 타박타박 걸음을 옮깁니다. 병실은 마흔 걸음에 다 돌 수 있는데 이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습니다. 다리가 아픈 미래는 자리에 주저앉아 쉬고 싶습니다. 하지만 땅이 울퉁불퉁하고 지저분해서 앉으면 하얀 드레스를 더럽힐 것만 같습니다.
 

이마의 땀을 닦는 미래의 눈앞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오른쪽 길 끝에는 복작한 마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큰 목소리로 싸우고 폴짝폴짝 뜁니다. 미래는 너무 무섭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밝다고 생각합니다. 왼쪽 길 끝에는 하얗고 예쁜 꽃밭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꽃밭에 바람만 계속 날립니다. 꽃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꽃밭이 조금 쓸쓸해보입니다. 머리 위로 토끼가 폴짝 뛰어 오릅니다. 어느 쪽으로 가고 싶어? 미래는 고민합니다. 다시 하얀 빛이 눈에 들어오기 전, 미래는 오른쪽을 마지막으로 뒤돌아봅니다.
 

문이 열립니다. 의사 선생님이 웃는 얼굴로 들어옵니다. 미래는 어쩐지 눈을 뜨고 싶지 않습니다. 다정한 말소리와 함께 따끔한 주사 바늘이 팔로 파고들어옵니다. 잠이 들기 전 미래는 실눈을 뜨고 천장을 봅니다. 꿈속의 토끼가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어느 쪽으로 갈래? 미래는 잠시 고민합니다. 몸의 힘은 점점 빠지는데 토끼는 계속 물어봅니다. 어느 쪽? 미래는 살며시 오른손을 쥐어봅니다. 약 때문인지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그래도 오른손에 힘을 꼭 줍니다. 토끼가 빙그레 웃는 듯합니다.

▶위 글은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개발, 상용화할 예정인 ‘인공혈액’ 소식을 바탕으로 구상되었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