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 / 한국어판 편집장

지난 8월 장편 노동영화인 <안녕? 허대짜수짜님!>(노동자뉴스제작단 제작, 정호중 감독)이 개봉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아울러 불안정한 노동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고민해본다. <편집자주>

영화를 보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내가 <안녕? 허대짜수짜님!>을 본 곳은 다름 아닌 기륭전자 파업현장이었다. 파업 노동자들의 단식이 우려될 정도로 길어지고 있던 때였다. 이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간부인 ‘허대수’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금지옥엽처럼 기르는 평범한 아버지이다. 그는 최근 회사측과 협상 끝에, 20명의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것을 조건으로 파업 타결을 성사시킨다. 우리가 매체를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출발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허대수의 외동딸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총각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 참한 총각은 허대수가 자신의 장인이 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자 더 잘 대해드리지 못해 안달이 난다. 난감해진 허대수를 보며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가 “에이, 비정규직이면 어때요? 저 녀석 좋은 녀석이에요. 받아주지 그래요”라고 부추기자, 허대수는 대답을 회피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 좁지만 냉혹한 차이
이후 이야기는 능히 짐작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딸을 비정규직 남자친구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꾀병을 부리던 허대수는 이내 들통이 나고, 홧김에 가출한 딸이 사윗감과 사고를 치는 사이 실제로 직업병 진단을 받게 된다. 정규직에게는 우호적일 줄 알았던 회사는 허대수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이들에게 그저 냉혹할 뿐이다. 자신을 성심성의껏 간호해주는 총각을 사위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허대수는, 노동조합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다시 투쟁에 나서고 결국 승리한다.
‘21세기에 재탄생한 <파업전야>(1990년 제작된 국내 첫 장편 노동영화)’라는 찬사가 아깝지는 않았지만, <안녕? 허대짜수짜님!>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그 냉혹한 현실을 담담한 시선으로 잡아낸 것은 이 영화가 빚어낸 큰 수확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월급만 다르고 4대 보험만 다른 게 아니다. 아예 사는 곳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정규직은 시내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비정규직은 허름한 시 외곽 지역의 구식 가옥에 산다. 이 영화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받는 차별대우에 대해 구차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자기 사업 해보겠다고 나간 허대수의 옛 동료가 ‘사업은 돈으로 하는 거더라’는 깨달음을 얻은 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는 주택가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그저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공허한 ‘연대’의 메시지
말하자면 이 작품은 ‘노동의 위기’가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같은 일을 하고 다른 월급을 받는 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만 하면, 대형 포털사이트에는 ‘노동귀족들이 월급 더 받겠다고 난리 친다’며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넘실거린다. 하지만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다른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과 비교한다면, 허대수와 그의 처남은 ‘귀족’이다. 고작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늙고 병들면 회사로부터 버림받을 운명인 그들을 ‘귀족’이라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엔 분명히 사회적 격차가 있다. 그리고 정규직인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마다, “내가 비정규직 만들었냐?”고 묻는 것이다.
내 마누라와 내 자식이 현대건설에서 지어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나는 현대자동차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정규직 노동자이며, 내 술친구 노릇을 해주는 처남도 현대자동차 정규직이다. 허대수의 세계는 이토록 견고하다. 그의 딸과 비정규직 사윗감이 사랑으로 맺어지면서, 허대수와 사위는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가 된다. 그제야 ‘연대’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한다.
‘노동의 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비정규직끼리 뭉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기륭전자의 사측은 “공식적으로 기륭전자에는 노동조합이 없으므로 모든 파업은 불법파업이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나마 비정규직의 연대를 이루어낸다 해도, 정규직과의 전면적인 연대를 꿈꾸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영화에서는 그 꿈을 ‘결혼’으로 실현해낸다. 비정규직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고, 정규직 노동조합은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다. 현실로 닥친 노동의 위기 앞에 이 ‘사랑과 결혼’이라는 해답은 너무도 초라할 뿐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