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 본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회학과 대학원생들은 한바탕 큰 회의를 치른다. 이른바 ‘역할분담’ 회의! 대학원생 규모는 크지 않지만 BK21사업과 학진프로젝트 연구로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은 학과인지라 나눠서 해야 될 업무가 많다. 사실 일 자체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을 처리할 적절한 방법과 공평한 업무분담을 논의하기 위해 몇 시간에 걸쳐 회의를 한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대학원에 공부하러 왔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러나 다른 학과, 다른 대학 친구들처럼 등록금은 제쳐두고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아 헤매는 어려움은 겪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간간이 있는 회의는 역할분담 논의로 점철되고, 일상 대화는 행정적 업무나 ‘힘들어 죽겠다’는 투정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 할지 모른 채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콜로키움을 기획했고, 그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집담회를 갖게 됐다. 어찌 보면 지극히 실존적일 수 있는 이 모호한 질문(함께 공부하는 나의 동료는 지금 ‘내가’ 공부하는 것이지 왜 ‘우리’냐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을 콜로키움과 집담회 같은 일회성 행사를 통해 제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수차례 고민하면서,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렇게 시작했다.

                           꺼내기 힘든, 그러나 꺼내야만 하는 고민들

   두 차례의 콜로키움에서는 현재 우리가 위치한 학문연구공간과 나와의 관계, 제도권 내 학문공동체의 가능성이 논의됐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발제가 끝나고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발제자의 질문에 침묵이 흘렸다. 술자리에서나 오가던 이야기를 강의실의 밝은 형광등 아래서 하라고 하니 누구 하나 쉽게 말문을 열 수 없었던 걸까. 그러나 침묵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영희는 동료 연구자들의 권위적이고 보수적으로 학문하는 자세, 일상의 태도에 의아해한다. 주희는 입학 초기에 지닌 학문에 대한 열정이 학기가 지나갈수록 식어가고,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방향성을 상실한다. 진이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목청껏 구호 한 번 외치지 못하면서 집회 참가자들을 인터뷰하겠다고 그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자신의 모호한 위치에 혼란스러워한다. 경이는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부가 내준 연구비로 연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고민한다. 혜조는 모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공통의 책임을 공유하지 못하고 기피해버리는 동료들을 나무란다. 이들에게 계속 대학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아까워서,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갈 곳도 없어서, 심지어 ‘내가 낸 등록금이 얼마인데’라는 웃지 못할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민이는 주장한다. 교육재정 확충으로 인한 무상교육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주어진 장학금으로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으며 주어진 연구비로 멋진 연구를 해내자고. 이것이 지금 ‘내’가 놓인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학문공동체가 가능할까? 도대체 학문공동체라는 것은 뭐지? 그것이 필요하기는 한가? 철수는 생각한다. 공동의 경험이 부재한 상황에서 학문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고민의 과정이 바로 해답이다

  우리와 같은 현실에 있지만, 다른 공간에서 연구하는 친구들과도 함께 집담회를 벌였다. 그들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백 1: 젊은 시기의 열정과 에너지를 공부에 헌납하기 위해 진학했지만, 그가 꿈꿨던 학문의 상아탑은 신기루처럼 닿을 수 없었다. 지적욕구의 설렘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그의 연애 역시 기약 없는 학문의 길로 인해 막을 내렸다.
고백 2: 그녀는 대학원을 수료하고 1년째 ‘딴 짓’을 하고 있다. 딴 짓의 주요 활동무대는 대항대학을 표방하는 ‘다중지성의 정원’이다. 그녀는 외친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배타적 구분을 지양하고 그것을 넘나들어야 한다고, 학생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모호성을 벗어던지고 지적 생산자로서 임금보장을 주장해야 한다고!
고백 3: 연구실(연구공간 수유+너머)이 이미 내가 되었다는 그녀는 그곳을 ‘정글과 안뜰의 경계’라고 소개한다. 꼬뮨(연구실)은 마치 ‘자연상태’인 정글과 같아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전략을 구사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구사하는 이 생존전략은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안뜰의 역할을 한다. 그녀는 바로 이곳에서 학문공동체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떨리는 음성으로 환희가 이야기한다. 제도권의 영역에서 그곳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노력의 필요성을.
이렇게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짊어지고 갈 고민들을 쏟아냈다. 지금 내가 공부하는 것의 의미는 각자가 찾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 각양각색의 고민들이 서로에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공부는, 즉 ‘앎’은 알려지기 위한 것이며 소통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찾음으로써 우리의 고민도 해결의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들이 바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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