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 러시아 국립인문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미하일 리클린(1948~ )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의 러시아 사상을 이끌어가는 철학자 중 하나이다. 1977년 구조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공식’ 소비에트 철학의 지침들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꾸준히 서구 현대철학과 접속함으로써 소연방 몰락 이후 러시아 철학이 서구의 사유와 교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80년대 말 유럽에서 거주할 때 자크 데리다를 비롯해 명망 있는 철학자들과 교우했던 경험도 리클린의 지적 이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축이다. <모스크바의 데리다>(1993), <해체와 파괴>(2002)는 그 결산격이다. 자기 사유의 스승으로 메라브 콘스탄티노비치 마마르다슈빌리(1930~1990)와 데리다 두 사람을 꼽는데, 전자가 소비에트 철학의 집대성으로서 ‘사유의 종합’에 역점을 둔다면, 후자는 예의 해체론으로서 리클린의 사유에 가장 큰 이론적 바탕을 이룬다.
  하지만 단순히 해체론의 연장선에서 리클린의 사유를 비정(比定)하는 것은 오산이다. 우선 리클린은 해체의 이론적 탐구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해체의 큰 틀, 총론은 데리다 자신이 이미 짜놓았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오히려 각론, 곧 해체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각론을 통해 총론은 꾸준히 재구성되며, 복수적 변환의 과정을 통과한다(그러므로 데리다의 작업도 하나의 ‘각론’일 뿐, 총론 따위는 기획된 적이 없다). ‘해체의 실천’ 혹은 ‘실천적 해체론’이라 명명할 만한 리클린의 과제는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의 문화적 지형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데 있다. 질문은 이렇다. “전체주의 사회의 욕망구조는 어떤 것인가?” “그 구조는 어떤 방식으로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가?” 그것은 스탈린 시대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심성구조에 대한 물음이자 사회 일반의 동력학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리클린에 따르면 러시아 사회는 단절/연속의 동시성으로서 여전히 포스트/소비에트적 구조 위에 놓여 있으며, 해체의 실천은 당연히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된다. 시평집 <환희의 공간: 전체주의와 차이>(2002), <진단의 시대>(2003) 등이 이런 사유의 결과물이다.
해체론의 적용은 리클린의 삶을 극적인 ‘실천’의 무대로 이끌어갔다. 2003년 전위예술가이자 비평가인 아내 안나 알추크가 기획한 전시회 <종교 조심!>이 성물모독을 이유로 기소되어 오랜 법정 투쟁을 벌여야 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근 5년간 이어진 지리한 재판은 무혐의로 종결되었으나 리클린은 이론의 바깥, 해체적 실천의 장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 온몸으로 절감해야 했으며, 올봄에는 안나가 의문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극적인 파국을 맞게 되었다. 어느 대담에서 밝혔듯이 이 과정은 그로 하여금 한 사회의 의식 기저에 완고하게 자리잡은 무의식과의 투쟁이었으며, 해체의 실천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구체적으로 파고들 일이지 결코 일거에 전복적으로 성취될 수 없음을 확인케 해준 ‘수업’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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