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 /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은 변화가 빠른 나라이다. 어쩌면 오래된 ‘민족성’인지도 모른다. 옛날 중국의 한 사신이 조변석개하는 고려 조정의 정사(政事)를 두고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박정희정권 이래 90년대 초까지 학계·관계·언론계의 경제의식을 지배하던 두 단어는 ‘국민경제’와 ‘산업정책’이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로 그 단어들은 하루 아침에 ‘구닥다리’로 취급받아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말이 되었고 대신 ‘효율적 시장’과 ‘글로벌 스탠다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두 입장 중 어느 쪽도 신봉하지 않지만, 이 단어들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 또 10년 만에 위기에 처했다고 이야기하는 한국 경제의 고질을 진단하는 데는 효과적인 발견적(heuristic)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점을 추려 말하자면, 산업정책도 국민경제도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효율적 시장과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허울을 둘러쓰고 살아남는 위선이 벌어졌던 것이 특히 지난 5년간의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위기는 더욱 복잡한 ‘복합 골절’의 양상을 띠는 면이 있다. 

                        김대중정권: 세계화와 국민경제, 시장과 산업정책

  97년 이후 급변한 한국의 경제담론 지형에서 김대중정권 시기에 두 개의 대립쌍을 이루던 단어 조합은 ‘세계화와 국민경제’와 ‘시장과 산업정책’이었다. “평평한 지구의 올리브나무”와 같은 아리송한 은유로 전파된 세계화 담론에서 가장 금기시되었던 것이 ‘국민경제’를 경제적 조정의 완결된 단위로 사고하는 관념이었고, 한국의 관료·학자·언론인 모두 급속히 사고를 개조해 대한민국 경제를 활짝 열어젖혔다. 어떤 산업이 흥해야 하고 어떤 산업이 사라지거나 축소되어야 하는지를 국가가 개입해 결정하는 것은 21세기의 경제담론에서 신성모독에 가깝다. 최소한 이것이 외환위기 이후에 일어난 경제적 의식의 변화라고 우리는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랬던가? 국민경제 시대는 끝났고 모든 개인은 스스로 전지구적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외쳤던 이들이 ‘국가기구를 통한 국민경제 체질 개선’이라는 새로운 국민경제 개조에 열을 올리지 않았는가? 산업정책이 시대착오였다면 세기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닷컴붐 정책’은 무엇이었나? 관료·정치가·학자·언론인 모두 박정희식 자본주의에서 경제에 대한 근본적 의식이 형성된 이들이다. 즉, 세계화와 시장경제라는 담론은 국민경제의 새로운 지침이자 산업정책의 새 방향이라는 식의 기묘한 경향이 이미 김대중정권부터 있어왔다.

                              노무현정권: 금융허브와 서비스 경제론

  김대중정권 시대부터 ‘3년 만에 IMF를 극복한 슬기로운 국민’이라 운운하는 정치적 수사에 익숙해져 현재 위기와 97년 위기를 서로 단절된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하지만 김대중정권 시절 시장지향적 정책이 과연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 현재의 위기까지 이어진 한국경제의 불안정성 체질의 원형을 정초한 것인지는 세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닷컴붐이 꺼진 후인 2001년, 한국경제의 불황 조짐을 기억해야 하며 그 대책으로 김대중정권이 선택했던 신용카드 남발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노무현정권은 출범했던 2003년부터 이미 적극적인 ‘국민경제’ 차원의 ‘산업정책’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중정권 때처럼 교과서에 나오는 세계화정책을 실천하면서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대할 수 없었던 까닭에 적극적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민경제’ 개조,  즉 규모의 ‘산업정책’을 추동하게 된 셈이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양대 제조업 강국 사이에 낀 한국은 제조업에 대한 전망을 버리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당시를 풍미하던 담론이었으며,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산업으로 활로를 열어야 한다는 ‘지식기반 경제론’과 ‘황금알을 낳는 연금술’로 떠오른 금융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금융허브론’이었다. 이는 국내의 ‘낙후된’ 각종 제도적 인프라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한국형 세계화 담론으로 발전했고, 마침내 한미FTA의 타결이라는 지점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처럼 금융과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의 산업구조와 제도변혁은 때마침 앨런 그린스펀 연준의장이 실시한 저금리 정책으로 한국에 밀려든 풍부한 유동성과 만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다. 코스피는 2,000선으로 올라갔으며, 은행들의 자산은 늘어만 갔고, 모기지 대출 및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맞물린 부동산붐도 힘차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국내의 산업 연관이나 제조업의 기초는 부실화를 겪고 있었고, 부동산 가격 등귀와 생활비용 상승은 고비용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었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핵심이 되었던 것은 ‘자산가격 상승’과 그를 통한 GDP성장률의 제고였다. 도시 중산층까지 펀드와 부동산에 맛을 들이게 되면서 이 두 목표에 대한 사회의 합의는 하나의 신앙 수준으로까지 올라갔다. 작년 대선 당시 나온 각 후보의 공약을 보라. 내가 알기로, 경제 성장률 몇 퍼센트가 대통령 선거의 최대 공약으로 나오는 상황은 현대 세계 정치에서 아주 진귀한 풍경이다.

                                       2009년, 그리고 그 이후

  이명박정권은 금융허브와 한미FTA라는 노무현정권의 핵심 경제노선을 소중하게 계승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규모 민영화와 의료·교육 등 각종 서비스의 상품화라는 공격적인 정책까지 결합시킬 것을 공언하며 출발했다. 그러나 취임 1년이 채 되지 않아 세계경제위기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 국면에서 현재 한국경제가 맞고 있는 위기는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성장모델’의 위기이다. 지난 몇 년간 정부와 관변 지식인들의 신앙이었던 ‘글로벌 투자 은행’은 리먼브라더스 앞에서, 빛나는 ‘금융허브’의 전망은 졸지에 거의 쪽박을 차게 된 아이슬란드 앞에서 빛을 잃어버렸다. 그 밖에 현 정권이 기획하던 각종 성장정책들은 모두 경제의 호황을 전제로 한 것들이어서,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무모하게 추진했다가는 엄청난 거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둘째, 21세기 경제 패러다임이자 온 나라의 신앙이 되었던 ‘자산가격 상승’의 신화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외환기금 및 국민연금이나 각종 규제 완화 등으로 주식과 부동산가격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하는 현 정권의 노력은 시장에서 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셋째, 그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부실해져왔던 제조업과 수출 등 실물 부문의 실적 악화가 급속히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가뜩이나 악화일로에 있는 국민소득 흐름이나 은행 건전성을 건드리면서 두 번째의 자산가격 하락과 맞물리게 되면 내적 붕괴로 연결될 우려가 사방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는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는데, 노무현정권 이래 한국의 지배계층이 금융허브라는 (사이비) ‘산업정책’과 FTA입국론 식의 (사이비) ‘국민경제론’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인 귀결이라는 점이다. 꿈꾸던 미래가 날아간 것만 아니라, 꿈을 추구하며 과거에 치렀던 비용지출 청구서가 한꺼번에 날아들고 있다. 서두에 말했지만 나는 국민경제/산업정책이나 시장경제/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조합 중 어느 쪽도 구세주가 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조합 모두 21세기 세계경제의 상황에서 귀담아 듣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지혜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듯 이 두 조합을 기묘하게 결합시킬 경우 진정한 산업정책은 내팽개쳐지고, 국민경제는 형해화되며, 글로벌 스탠다드 변화 추세의 포착은 완전히 빗나가고, 시장경제는 국민연금과 대운하를 앞세운 정부의 놀이터가 되는 최악의 조합이 나오게 된다. 미래는 뿌옇고 현실은 캄캄하고 과거는 시퍼렇다. 정말로 현실적인 출구를 찾기 위한 논의의 시작점은 한국 경제담론의 표리부동을 걷어치우고 이 두 조합의 네 단어를 각각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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