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듣게 되는 소식이 있다. 이 경우에는 ‘무소식이 희소식’이건만, 올해도 그 비보는 어김없이 들려온다. 지난달에는 수능 이틀 후 고3 수험생이 수능성적을 비관해 투신자살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죽음의 입시’가 초·중등학교에까지 번지고 있다. 같은 달 특목고 입시에서 떨어진 중3 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그 며칠 전에는 초등학생이 일제고사에서 성적이 떨어진 것을 비관해 자살했다. 이들의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이는 점수 몇 점으로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수치화·서열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사회적 사고’인 것이다.
  최근 몇 개월 사이 교육정책과 관련해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변화 조짐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공약으로 내년 3월에 개교할 국제중학교는 이미 학부모들 사이에서 ‘특목고·명문대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의 첫 관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이 코스를 밟으려면 초등학생 때부터 내신 및 외국어 성적을 철저히 관리하는 등 입시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에 더해 얼마 전 4년제 대학들의 모임이자 올해부터 대학입시의 관리감독을 맡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3불정책(고교등급제ㆍ본고사ㆍ기여입학제 금지) 폐지’를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교협의 박종렬 사무총장은 “기여입학제 도입은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하지만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실시문제는 대학 자율로 둬도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내년 1월 총회에서 3불정책 폐지안에 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여기서 ‘누가’ 그런 ‘합의’를 하는가를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3불정책을 폐지함으로써 최대이익을 취할 이들은 바로 사교육 시장을 점령한 자들, 그리고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3불정책은 지난 10년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합의로서 대입제도의 근간이 되어왔다. 3불정책이 엄연히 존재하는 지금도 각 대학이 교묘하게 이 원칙을 위반해온 결과 “연세대와 고려대의 인문계 정원 10명 중 4명이 외고 출신”이라고 한다(권영길 의원실, 11월 25일 발표). 대학이 아무런 제한 없이 특목고 출신 학생을 우대하고, 교과범위를 넘어선 고난이도의 본고사 문제를 출제하게 되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이들은 지방의 일반고 학생들이다.
  대교협 박 사무총장은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자율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자율화가 사교육할 자유와 사교육으로 무장한 학생들만 선발할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3불정책의 폐지는 학벌중심주의와 교육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누구도 교육을 빌미로 학생들에게 패배주의를 학습시킬 권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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