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냉각된 남북관계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 이행조치를 취해나가면서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이명박정부와 북한의 입장을 들어보자.


통일부가 지난 9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자료에 따르면 현재 남북관계 경색은 정부의 호의에 대한 북한의 오해로 빚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금년 2월 말 출범과 동시에 “향후 남북관계를 지금까지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상생과 공영의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결정”하였으나, “북한은 3월 말부터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면서, 당국간 대화와 협력을 거부”해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비핵·개방·3000구상’을 ‘선 핵폐기론’, ‘대결론’이라고 비난해왔다. 여기에 지난 7월 11일 남한의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까지 발생했다. 정부는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을 “정부 출범 초기의 ‘과도기적 조정기’로 판단”하면서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친 전면적인 대화를 제의하는 등 남북대화 재개에 힘쓰고 있다고 말한다. 

 

 

남북대화 중단에 대한 입장 차이


한편, 북한은 이명박대통령 취임 이후 10일 중 8일 이상, 대남 비방을 지속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진영 한나라당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올해 2월 25일 이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8월 24일까지 6개월간 <로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내용을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이다. 이에 따르면 북한이 이대통령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비방한 건수가 78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한미동맹관계를 꼽을 수 있다. <로동신문>은 이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민족주의로는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던 내용을 거론하면서 “미국과 공조로 북남관계를 파탄시키고 동족을 압살할 흉심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명박정부를 비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핵·개방·3000구상’으로 표현되고 있는 대북정책에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우리의 핵 완전 포기와 개방을 북남관계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극히 황당무계한 넋두리”라며 “민족의 이익을 외세에 팔아먹고, 대결과 전쟁을 추구하며, 북남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반통일적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명박정부가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에서 두 차례 확인된 남북 정상간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를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는 북과 남이 힘을 합쳐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이룩하는 문제를 비롯해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들이 다 주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명박정부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무시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10.4선언의 합의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바 우선 순위와 시기 조정 등이 필요”하고 “북한이 지금과 같이 대화를 거부하면서 우리에게 무조건적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결국 현재와 같은 남북대화 중단 상황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남한이 대북정책을 전환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작년 말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서 북한 당국자들은 이명박후보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당선 이후에도 1개월여 동안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며 새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북한이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을 대통령 이름을 거명하면서까지 공식적으로 비난한 것은 4월 1일 <로동신문>을 통해서였다. 신문은 “지금처럼 북남선언들과 합의들을 짓밟고 외세를 추종하면서 대결의 길로 나간다면 우리도 대응을 달리 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때 북한은 ‘비핵·개방·3000구상’을 “반동적인 실용주의”, “반통일선언”이라며 맹비난했다.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에는 응하지 않지만 영변 핵시설 폐쇄 및 불능화 등 비핵화 이행조치는 단계적으로 실행해나가고 있다. 또한 6자회담 안팎에서 미국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면서 비핵화 조치는 2단계 완료 단계로 나아가는 동시에 북미관계 개선 논의도 가능하게 되었다. 남북대화는 멎어 있는 상태지만 말이다.

 

이념적 판단에서 초당적 정책으로


‘비핵·개방·3000구상’ 혹은 최근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으로 표현되는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정상국가화, 남북경제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때 북한은 상생과 공영의 길로 함께 나아갈 파트너가 아니라 시혜 혹은 계몽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남북관계는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 종속되어 있다. 즉,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한의 전반적인 힘의 우위를 활용하여 북한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도덕적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북정책으로 인해 이명박정부는 이중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첫째는 연계 딜레마이다. 연계전략이 소기의 효과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일방과 타방의 이해관계가 대칭적으로 형성되어 있고, 타방이 일방으로부터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정도의 신뢰가 존재해야 한다. 이 두 조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으면 상대방으로부터의 반발이나 대내적 비판에 직면함으로써 연계전략의 효과는 크게 약화되거나 심지어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새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핵문제와 관련해 경제 지원 및 협력을 포함하고 있다(하지만 이 부분은 10.4선언의 밑바탕이 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병행 발전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제일의 관심사인 안전보장을 획득하고자 하기 때문에 남북의 이해관계가 대칭적인지 의문이다. 게다가 10월 현재, 남북간 신뢰는 바닥 상태이다. 실제로 남한의 연계전략이 계속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었고,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남한의 역할 약화 등 연계 딜레마의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둘째는 단절 딜레마이다. 현 정부가 전 정부의 대북정책과 엄격한 차별성을 기하는 데 집착하면서 야기될 수 있는 높은 기회비용이 문제인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대선 유세 때부터 ‘화해협력’, ‘평화번영’ 정책을 추진해온 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해왔다. 이것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을 비롯한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부정하고, 뭔가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현 정부는 이전 정부가 추진해온 화해협력을 통한 신뢰구축 노력,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의 병행 등을 이념적 잣대로 비판하면서 거의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로 남북대화가 중단됨에 따라 경제협력, 이산가족 상봉, 군사적 신뢰구축 등 남북간 현안 제반이 거의 묶여 있는 상태이다. 이로써 남북관계 발전의 제도화와 평화체제 구축 전망은 요원해보인다.


한국의 많은 정책 분야 가운데 대북정책에는 이념적 요소가 많이 작용하지만, 이념적 판단을 가장 경계해야 하고 일관성을 바탕으로 한 초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명박정부가 8개월간 보여준 자세가 전자의 측면이라면 앞으로는 후자의 측면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하길 기대해본다. 특히 미국의 전향적인 대북조치로 비핵화 이행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는 현 시점을 활용하여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대북 접근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지난 9월, 10.4선언 등 기존의 남북 합의를 존중하면서 그 이행방안을 논의할 남북대화를 재개하자고 했던 제의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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