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실제로는…….” 몇 년 전 대학원생들 사이에 ‘대학원생과 국회의원의 공통점’으로 유행한 우스갯소리다. 그러나 이 우스갯소리가 사실임이 밝혀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난 2005년 <교수신문>이 서울지역 사립대 대학원생 2백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원생 생활실태 및 의식조사’에 따르면, 63.4%에 달하는 대학원생들이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4시간도 공부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교수신문> 11월 6일자).
최근에 발표된 조사도 대동소이한 결과를 보여준다. 작년 2월 5일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석·박사과정 졸업예정자 1천8백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6년 대학원 졸업예정자 대학원생활 의견조사 연구’에 따르면, 58.3%가 하루 평균 4시간 이하로 공부한다고 응답했다. 연구를 실시한 김명언 원장(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은 “응답자들이 수업시간을 제외한 순수 학업시간만을 응답했는지 불분명하다”며, 이 결과조차 “학업시간이 다소 과대 포장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공부 안 하는 석사, 공부 못하는 석사
주목할 만한 것은 위 두 조사에서 조사대상의 절반 이상이 석사(졸업자 포함)였다는 점이다. 특히 <교수신문>의 경우 응답자의 81.2%가 석사였으니, 사실상 석사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요즘 석사들은 공부를 안 한다”, “석사들 수준이 꼭 학부생들 같다”는 세간의 인식이 맞는 것일까? 그러나 사정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위 두 조사의 응답자들 중 절반 이상이 그렇게밖에 공부할 수 없는 이유로 “생활비 및 등록금 마련”을 꼽았기 때문이다(<교수신문> 조사의 경우 62.3%,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 조사의 경우 56.4%). 요컨대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문제가 쉽게 해소되기는 힘들 듯하다. 본교 대학원학사내규 관련 조항(제3장 2절 74조)에 의거하면 학업에 집중하며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재학 중 성적우수자에게 주어지는 성적장학금, 연구장학금, 직계장학금, 기타장학금밖에 없다. 여기서 교직원이나 법인 임직원의 직계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직계장학금과 “대학원장이 따로 정한다”라고만 규정되어 있는 기타장학금을 제외한다면 수혜가 예상 가능한 교내 장학금 액수는 그리 많지 않다(중앙우수논문제 등의 학술논문 당선상금은 제외).



 

“교내 아르바이트, 과외, 조교 등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아요. 당연히 일에 지쳐서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요.” 학과와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본교 박사과정 휴학생이 자신의 석사과정 시절을 회고하면서 들려준 말이다. “그나마 박사들은 낫죠. 석사는 강의도 못하잖아요.”
실제로 본교 시간강사위촉규정 제2조(자격)에 따르면, 학부 시간강사의 경우 대학졸업자로서 4년 이상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사람, 대학원 시간강사의 경우 석사 이상 학위소지자 등이 시간강사가 될 수 있다(이런 규정은 다른 대학도 비슷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연구지원단체의 지원사업도 주로 박사학위 소지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가령 학술진흥재단의 우수학자지원사업,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 등도 모두 박사학위 소지자가 대상이다. 또한 박사논문출판지원사업은 있어도 석사논문출판지원사업은 없다. 박사들이 대학원의 프롤레타리아트라면 석사들은 룸펜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석사들의 기를 살려주자
비전임강사(시간강사) 문제가 전임교원의 문제이기도 하듯이, 석사들의 문제 역시 박사들의 문제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교수신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많은 수의 석사들이 대학원과정을 밟으면서 진로를 수정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응답자의 54.2%가 “학자의 길을 걷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밝힌 데 비해 앞으로의 진로를 묻는 질문에는 48.8%가 “취업을 하겠다”라고 대답했다. 이는 석사들이 경기불황으로 인한 취업난 때문에 대학원을 도피처로 삼는다는 세간의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학문후속세대의 근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것임을 예상케 해준다.
물론 석사들이 공부를 못하는 상황을 모두 경제적 원인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는 단지 등록금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장학금 액수가 급격히 증가하지 않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다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이고, 각자가 이를 확립할 수 있도록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석사와 박사들이 자유롭게 논문을 기고하고 상호 비평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학회지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석사학위논문을 출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무리 허황된 생각일지라도 이제는 체념이 아니라 대안을 생각할 때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