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책임연구원

한때 국내 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포스트식민주의 열풍이 다소 뜸해진 듯한 양상이다. 우리와 비슷하게(혹은 더 오래) 식민지배의 후유증으로 신음해온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은 최근 영미권과 서유럽 학계의 지적 전통에서 비롯된 포스트식민주의를 비판하며 자신들의 경험과 성찰에 근거한 탈식민주의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의 노력을 통해 지식의 식민성이란 문제를 되돌아본다. <편집자주>

[사진설명] 탈식민주의 연구그룹(뒷줄 왼쪽 안경 쓴 사람부터 란데르, 키하노, 미뇰로, 두셀). 

 

최근 국내 학계에서도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 대신 ‘탈식민주의’(decolonialism)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이따금 볼 수 있다. 대부분 ‘post-’의 모호한 함의, 즉 ‘후기’인지 ‘탈’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 때문에 식민주의 극복을 더 명확히 의미할 수 있는 ‘de-’를 선택한 경우이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포스트식민주의가 영어권의 식민 경험과 서구 학계의 지적 전통에서 비롯됐다면, 탈식민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의 경험과 성찰의 소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탈식민주의가 국수적인 이론이거나 지역적으로만 통용되는 이론은 아니다. 탈식민주의연구(Decolonial Studies)는 종속이론, 해방철학 등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사유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서구 학자들과 대화하고 경쟁하면서 근대와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식민주의에서 탈식민주의로
독립의 역사가 2세기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식민지배의 후유증에 신음해온 라틴아메리카 현실에서 탈식민주의는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탈식민주의가 탈식민주의연구로 정착된 것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는 페루의 종속이론가인 아니발 키하노이다. 그는 1996년 뉴욕주립대학(빙엄턴)에서 동 대학 페르낭브로델센터 소장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지적인 교류를 한층 심화시킬 기회를 얻었고, 켈빈 산티아고가 지도하고 라몬 그로스포겔 등이 참여하는 식민성 세미나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1998년 그로스포겔이 빙엄턴에서 키하노, 월러스틴, 월터 미뇰로, 엔리케 두셀 등의 석학들이 참가한 국제학술대회 ‘트랜스모더니티, 역사적 자본주의, 식민성: 포스트분과학문적 대화’를 개최하고, 2000년에는 에드가르도 란데르가 편찬한 <지식의 식민성: 유럽중심주의와 사회과학>이 출판되면서 탈식민주의연구는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탈식민주의연구는 5개국(브라질, 에콰도르, 코스타리카, 미국, 포르투갈) 12개 연구소 내지 연구연합체에 의해 공동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2009년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지식의 탈식민화: 포스트식민주의연구, 탈식민적 지평’이라는 여름학교를 열어 국제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탈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포스트식민주의는 근대성을 영국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의 소산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산업혁명, 계몽주의, 프랑스혁명 등의 시대인 18세기를 근대성의 시발점으로 보는 서구중심적 관점과 일치한다. 반면 탈식민주의는 본격적인 신대륙 경영시대인 16세기를 근대성의 기원으로 본다. 탈식민주의의 시각이 월러스틴의 시각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월러스틴은 근대세계체제가 장기 16세기의 시작인 1450년경에 확립됐고, 여기에는 1492년의 신대륙 ‘발견’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월러스틴이 종속이론의 학문적 성과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나 근대성이 유럽에서 발생하여 시차를 두고 외부로 이식되었다는 서구 중심적 분석틀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진행 중인 탈식민적 전환
하지만 탈식민주의연구는 18세기 근대성 기원론과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론 양자에 모두 비판적이다. 가령 키하노가 16세기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는 자본과 세계시장과의 관련 속에서 비서구 지역의 노동, 자원, 상품을 통제하는 방식이 신대륙 정복과 함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성이 식민지배 없이는 발현되지 못했으리라는 관점을 역설한 것이다. 나아가 키하노는 근대성과 식민성을 동전의 양면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는 식민성의 문제를 은폐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근대식민세계체제’라는 개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키하노를 비롯한 학자들이 사회과학을 통해 탈식민주의연구를 정착시켰다면 인문학에서는 해방철학자 두셀의 기여가 단연 돋보인다. 두셀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패러디해 “나는 정복한다, 고로 존재한다”, 즉 “정복하는 자아”(ego conquistus)가 서구 근대주체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두셀 역시 근대성은 곧 식민성의 역사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탈식민주의의 시각에서 볼 때, 우고 차베스와 에보 모랄레스의 대통령 당선을 가능케 한 현 시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은 포퓰리즘이나 시대착오적인 좌파의 부활이 아니다. 가령 미뇰로는 2006년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역사상 원주민 최초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건을 ‘탈식민적 전환’(decolonial turn)이라고 규정한다. 서구 근대 이성과 이에 대한 정신적 종속 때문에 이중·삼중으로 착취되어온 원주민들의 복권이야말로 본격적인 탈식민주의 행보라고 평가한 것이다. 모랄레스의 행보가 늘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방식이 아닌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원주민 문제와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 고위관료나 교수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 출신인 우리 현실에서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독자적인 해결책을 찾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탈식민주의연구의 주요 극복 과제가 지식의 식민성이라는 점에서 혹시나 우리나라가 볼리비아보다도 더 심각한 식민적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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