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수 / 사학과 석사과정

현대과학은 인간 탄생의 신비를 밝혀내는 데 집중해왔다. 태아의 수정에서 탄생까지의 과정을 캐내며 조물주의 신비를 파헤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떠한 과학자도 죽음에 대해서는 얼버무릴 뿐이며, ‘죽어가는 자만이 죽음을 알 수 있다’는 통념이 지배적이다. 죽음은 현대과학이 아직 풀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죽음은 실제로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란 말인가. 이 물음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 있다. 바로 <궁정사회>와 <문명화과정>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다.
엘리아스는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한 태도 변화를 세 단계로 설명한다. 우선 인간은 각각 지옥과 천국을 상징하는 하데스(Hades)와 발할라(Valhalla)의 신화를 통해 죽음을 집합적ㆍ소망적 환상으로 모호하게 받아들이다가, 그 다음 단계로 나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는다. 그러나 결국 죽음을 우리 자신의 실존과 관련된 사실로 바라보게 된다.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더 이상 공동체가 공유하는 열린 의식(儀式)이 아니며, 죽어가는 자는 의사와 간호사에 의해 때 이른 격리를 겪는다. 현대과학은 인간을 ‘폐쇄인’(Homo clausus)으로 만들며, 죽음의 고통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엘리아스는 이러한 노력이 오히려 고독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불러오며 정신세계의 무질서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근대 의학이 인간의 생사를 관리하게 된 결과,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병원에서 고독하게 생을 마감한다. 여기서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를 간호하며 그들의 임종도 지켜보게 된다. 이들은 ‘의학윤리’라는 교과과정을 통해 죽음의 문제를 생각해볼 기회를 갖기도 하지만, 의사들 대다수가 죽어가는 환자를 사무적으로 대하며 격리시키려고만 한다. 그들에게 환자는 단지 죽어가는 사람이며 은폐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나는 현대인이 죽음에 대해 보다 성숙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장차 우리의 건강을 책임질 의학도들이 이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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