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 문화평론가

  경제 위기와 더불어 한국 영화와 드라마도 위기에 빠져 있다. 제작편 수도 줄었고, 흥행작이나 주목할 만한 드라마도 없다. 풍성한 것은 단지 도발적인 영상들뿐이다. 특히 올해에는 동성애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부쩍 늘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소년 소년을 만나다>, <쌍화점>,<미인도>, <바람의 화원> 등이 올 하반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 사회적 인식 변화와 안팎의 위기 상황이 이러한 동성애 영상 콘텐츠의 증가를 가져온 요인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한국 영화의 위기부터 살펴보자. 상황을 여러 가지로 분석해볼 수 있지만, 한국 영화의 위기는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보지 않는 현상에 그 원인이 있다. 올해 한국 영화는 내용이 다양화되었는데도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무엇을 담아도 주목을 받지 못할 때, 마지막으로 영화가 의존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섹슈얼리티이고, 다른 하나는 ‘금기’이다. 섹슈얼리티는 말 그대로 파격적인 정사신이나 노출을 전면에 내세워 흥행을 노리는 데 활용된다. 하반기에 상영되는 <미인도>와 <아내가 결혼했다>의 마케팅은 이것에 맞추어져 있었다. ‘금기’는 대중문화에서 상품성을 갖는 호재다. ‘설마’하는 심리를 자극하면 ‘혹시나’ 하는 궁금증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금기 위반 여부는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다. 이러한 금기의 소재는 도덕·윤리 혹은 진리라 믿었던 상식의 붕괴를 가져오는 내용일수록 선호된다. 동성애도 사회적 금기의 영역이다. 동성애가 강력하게 금기시될수록 동성애에 대한 영화는 노이즈 마케팅에서 우위를 점한다.

  금기의 대상이었던 동성애 영화가 많아진 것을 변화된 사회의식, 나아가 사회적 진보의 잣대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한국의 동성애에 관한 영상콘텐츠의 성격을 좀 더 살펴본 뒤에 내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꽃미남만 동성애할 자격 있나

  대부분 동성애 영화들이 꽃미남들의 사랑이야기다. <왕의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을 때 동성애자들은 언론을 통해 이 영화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현했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낸 것은 이런 유형의 영화가 동성애에 대한 왜곡을 낳기 때문이었다. 동성애는 꽃미남만 나누는 사랑이 아님에도 꽃미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제작자들은 꽃미남이라는 코드가 젊은 여성들의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흥행 판도를 여성이 움직이기 때문이며, 여성은 레즈비언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 동성애는 사극 <바람의 화원>이나 <미인도> 같이 남장 속에 숨어버린다.
  일부에서는 여성들의 경제적인 독립 증가로 연하의 꽃미남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졌고, 이에 동성애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가 증가했다고 한다. 혹은 욕망 표출의 직접성과 금기 위반의 쾌감이 동성애로 결집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동성애를 다루는 미디어가 증가한 것은 꽃미남에 대한 여성의 욕망과 동성애의 일탈 쾌감의 심리가 결합되어 발생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야오이에 대한 대중문화적 축적이나 인식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들 영상콘텐츠들의 대부분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동성애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동성애 코드’ 영화나 드라마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 아니거나 이성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에서 공길을 사랑하는 이들은 공길의 남성성이 아니라 여성성을 사랑한다. 이런 우회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특히 심하다.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을 사랑하는 기녀 정향은 신윤복의 남장을 사랑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한결이 사랑한 것은 남장한 은찬의 여성성이지, 남성성이 아니다.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동성애는 아니어야 한다’는 강력한 사회적 금기를 따랐기 때문이었다. 즉, 동성애 코드의 영상콘텐츠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금기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편견을 강화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것은 제작진의 책임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그밖에 한국 사회의 문화적 환경도 한 몫 한다. 얼마 전 트랜스젠더 연예인 故정채원과 커밍아웃 모델 故김지후가 자살했을 때 일부 미국 언론들은 한국 사회의 ‘호모포비아’가 그들을 죽였다고 전했다. 이렇게 동성애 혐오가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정면에서 다룰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대해서 개방되어 있다면 동성애 관련 영상물이 관객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목적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퀴어 영상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적 인식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다. 그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독립영화들이 부단히 노력해온 것도 사실이다. 대중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추구하거나 더 이상 우울하고 무겁게 그리지 않고 밝고 명랑한 연출을 추구하는 등 외연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동성애 상품화의 그늘

  올해 동성애와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영상들은 금기와 섹슈얼리티에 기대어 한국 영화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측면이 있다. 이는 동성애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인식, 그리고 경제적 상황과 한국 영화의 위기를 생각해볼 때, 너무 부담스러운 임무를 부여받는 게 된다.
  동성애 영화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은 하나의 문화적 편중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영화로 인해 동성애 문제는 한동안 주목 받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엔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두려운 것은 바로 뜨거운 관심 뒤에 다가올 외면의 쓸쓸함과 고독이다. 새롭게 소비하기 위한 하나의 소재일 뿐이라면 분명히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대단한 상상력이나 작품성에 기반한 작품임에도 단순히 동성애만 부각되거나 그것에만 편중되는 것은 작품을 만든 사람이나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모두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동성애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사랑의 한 형태이다.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애써 분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영화와 동성애 영화가 아닌 것을 애써 구분하는 현상이 차별이자 편견 조장일 수 있다. 무엇보다 꽃미남이 아닌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이나마 덜 강화하면 다행인 상황이 반복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동성애는 심심풀이로 즐길 팝콘 타임용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진지한 사랑일 수 있다. 이러한 동성애 코드의 영상들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 일조한다면 긍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