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력 인플레’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 9월 3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08년 교육기본통계조사’(올해 4월 1일 기준)에 따르면 대학 진학률은 84%에 육박했다. 이는 해외 주요 국가들의 대학 진학률이 50% 안팎에 머무는 것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평균 최종학력의 전반적인 상승 탓에 학력의 가치 자체가 저하되는 현상을 뜻하는 학력 인플레가 더욱 가속화된 것이다.
흔히 학력 인플레는 대학 졸업생이 고교 졸업생의 일자리를, 대학원 졸업생이 대학 졸업생의 일자리를 차지하는 ‘하향 구직’ 현상을 낳는다. 그리고 이 현상이 뒤집힌 형태로, 저하된 졸업장의 가치를 만회하기 위한 ‘묻지마 진학’ 현상을 낳는다. 문제는 이 두 현상이 장기간의 경제침체로 인한 고학력실업 문제, 날로 높아지는 등록금 문제와 결부되어 비자발적인 학업중단(포기)이나 휴학 비율의 상승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대학원생들의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연구성과로 소통하기?
이런 상황에서도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거나 유지해갈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연구성과를 공개적으로 소통시키는 것이다. “각종 언론매체나 잡지에 실린 반응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지난 98년 석사논문을 단행본으로 출판했던 김정한 씨(서강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수료)의 말이다. 김씨는 석사논문을 마친 뒤 ‘계속 공부를 해야 할까’, ‘내가 연구자로서 능력이 있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때 주변에서 들은 평가에 힘입어 연구자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제 연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기보다는 ‘내 문제의식이 소통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더 공부해서 더 많이 소통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그러나 지금은 김씨처럼 소중한 경험을 누릴 기회가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현재 출판사들을 통해서 자신의 학위논문을 공간(公刊)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취업과 박사과정 진학의 기로에 놓인 석사의 경우에 논문 출판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박사논문, 그것도 인맥으로 소개받거나 이미 다른 경로로 실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의 박사논문만을 출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바로 단행본으로 출판해도 될 만큼 내용이 알찬 학위논문들이 아니면 출판이 힘들 것이다”라고 돌베게 출판사의 김희진 인문팀장은 말한다. “그리고 현실적이고 시의성 있는 주제, 출판시장에서 원하는 주제들을 다룰수록 좋다.” 요컨대 출판계에서 교양서나 대중서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면 대학원생들이 연구성과를 출판하기가 불가능한 셈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논문형 글쓰기로는 대중독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 하물며 펜과 종이보다 마우스와 스크린에 익숙한 젊은층을 유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 논문을 읽어줘!
물론 자신의 연구성과를 소통시킬 수 있는 통로가 단행본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학술지가 있다. 현재 학술진흥재단의 등재학술지는 902종, 등재후보학술지는 533종에 달한다. 이에 포함되지 않은 학술지까지 포함한다면 그 종수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학술지는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소통이 내부적으로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소장의 지적처럼 “대부분의 등재지가 내용의 참신함보다는 논문형 글쓰기만을 암묵적으로 강제하므로 발랄한 글쓰기를 봉쇄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통로로 잡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작년 10월 한국언론재단이 발표한 ‘잡지 경영 현황과 발전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행되는 학술/학회지는 123종이다. 그러나 이는 아동지ㆍ교육학습지까지 포함한 숫자이다. 실제로 활발히 유통되고 있는 학술/학회지는 30종 미만이라는 게 출판계의 정설이다. 그나마 이 적은 종수마저도 숱한 잡지들의 휴간·폐간·신간이 반복되면서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온라인상의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라는 출판관계자들도 있다. 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논문형 글쓰기가 아닌 대중적 글쓰기를 훈련하고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출판계에서 말하는 대중적 글쓰기가 소통을 원활하게 해줄 수 있을지언정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법이 꼭 대중과의 소통이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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