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시 / 독일 훔볼트대학 문화학과 박사과정

임마뉴엘 칸트, 게오르그 헤겔, 칼 맑스, 프리드리히 니체, 에드문트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테오도르 아도르노, 칼 포퍼, 위르겐 하버마스 등 위대한 사상가들을 낳으며 전세계의 지적 논쟁을 주도한 독일 인문학계가 긴 침묵에 빠져 있다. 인문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인문학의 경제화와 국제화가 독일 인문학계의 비판정신을 짓누르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사례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편집자주>

 

여전히 많은 철학·문학잡지들이 발행되고, 인문학 서적들도 계속 집필·번역되고 있지만 독일의 인문학계는 긴 침묵상태에 빠져 있다. 1960년대의 실증주의 논쟁, 1970년대의 해석학 논쟁만큼의 철학사적 의미를 갖는 건 아닐지라도 1986~7년 홀로코스트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위르겐 하버마스와 에른스트 놀테 사이에서 벌어졌던 ‘역사가 논쟁’, 1999년 유전자 복제기술과 관련해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휴머니즘 전통을 도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촉발된 ‘슬로터다이크 논쟁’ 이후로는 현실 문제나 시대적 진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내세울 만한 인문학적 논쟁이나 쟁점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올해 6월 15일 만하임대학의 요헨 회리시 교수가 SWR2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현재 독일의 인문학자들은 자기 분야의 전문적·서지적 문제들에만 매달리면서 현실 문제에 어떤 테제를 제기할 만한 자신감은 잃어버린 듯하다. 왜 그럴까?

인문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인문학의 경제화·국제화
여기엔 무엇보다도 독일사회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대학, 특히 인문학과들의 거센 구조조정이 작용하고 있다. 지난 정권 때부터 시작된 독일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얼마 전부터 대학에도 변화를 요구하며 본격화됐다. 그중 인문학이 가장 큰 개혁 대상이었다는 것은 1995~2005년 사이에만 총 663개의 인문학 교수 자리가 통폐합으로 없어졌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프리드리히 니체 등의) 독일 인문학적 전통을 이어가던 문헌학과ㆍ교육학과는 이 기간 동안 35%의 교수자리를 삭감당해야 했고, 지금도 많은 인문학과들은 퇴직 교수의 후임을 선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수정원을 줄여가고 있다.
이로 인해 1999년 1인당 75.3명이었던 인문학과 교수 대 학생 비율은 2003년에 93.7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인문학 교수들이 더 많은 수업과 행정 부담을 맡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나아가 지금까지 정부 예산으로 이뤄지던 대학운영을 등록금 도입과 기업스폰서를 얻는 방식으로 자율화하려는 방침에 따라 인문학자들에게도 개별 연구와 저술 활동보다는 기업 등으로부터 재정후원을 얻기 쉬운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권고되고 있다.
‘인문학의 경제화’와 ‘국제화’라는 모토로 진행되고 있는 이와 같은 대학의 실용주의적 전환은 학생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1999년부터 독일 대학들은 연구 중심의 전통적인 마스터 과정(우리나라의 학사와 석사가 통합되어 있는 과정) 대신 졸업 후 취업준비에 더 역점을 두는 바첼러 과정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크푸르트대학 철학과 교수 마르틴 젤은 인문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공동연구, 연구평가, 기업스폰싱 등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연구를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오히려 큰 시간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힘을 잃어버린 비판이론의 토포스
또한 독일 인문학계의 침체는 독일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의 입지가 협소해지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되어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독일 인문학계를 지배하던 비판이론의 토포스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보다 선진적인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을 갖추고 있던 사회민주주의 국가 독일이 세계화된 자본주의 경제의 압력에 밀려 이를 후퇴시키고 사람들에겐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나마 감사히 받아들이게 하는 현재의 상황은 현실 비판의 토대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2년 전, 별로 새로울 것도 없던 하버마스나 귄터 그라스의 나치 전력을 문제 삼아 독일을 대표하는 이 두 비판적 지식인들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이뤄진 이후 소위 ‘새로운 시민성’을 내세우는 보수주의 흐름으로부터 좌파에 대한 이념적 공세가 강해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이는 무엇보다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68혁명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작년 <슈피겔>(44호)이 “68세대에게 자비를, 전부 다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라는 교묘한 제목의 타이틀 기사로 포문을 열었다. 그 뒤 68세대는 서구 문화의 업적을 경멸ㆍ거부하고, 가족파괴와 출산율 저하에 책임이 있으며, 결국 오늘날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성과중심의 사회원리를 속물적이라고 거부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현실 적응력을 상실케 했다고 비판받았다. 68년 학생운동의 주역이자 현재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가 중 한 명인 괴츠 알리는 <우리의 투쟁>(2008)을 통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패러디한 제목이 암시하듯) 심지어 68세대가 나치즘에 열광했던 1933년 독일 젊은 세대들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답습하고 있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몰락이 예견되고 있는 가운데, 독일에선 자본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요구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이것이 독일 인문학의 위축된 비판정신을 부활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오히려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국가의 행정권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갈지는 현재의 인문학자들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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