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비고 / 파리정치학연구소 국제관계학 교수

조르지오 아감벤은 흔히 ‘9.11사건 이후’라 불리는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뛰어나게 통찰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예외상태’ 개념은 테러와의 전쟁, 안전, 자유,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를 넘어 삶정치와 지정학의 수렴을 보여준다. <호모 사케르>(1998)에서 ‘벌거벗은 삶’과 ‘추방’이라는 개념으로 일찍이 이런 수렴현상을 지적한 바 있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주권권력은 한 인격을 단순한 육체로 뒤바꿔놓음으로써 삶 자체를 포섭하는 경향이 있다. 예외상태란 법과 자연, 외부와 내부, 폭력과 법, 전쟁과 정치 등이 서로 구분 불가능해지는 영역을 열어젖힘으로서 이런 경향을 실현시킨다.
따라서 예외상태라는 개념은 현재의 독특성, 가령 미국 대통령이 비상사태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고 그 수단으로서 온갖 군사적 작전을 명령할 수 있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법안들을 휘두르게 되는 상황, 그리고 오늘날 미국 정부가 스스로를 법(특히 자국의 헌법보다는 국제법)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와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일어난 포로학대 같은 현상뿐만 아니라 그런 현상을 낳은 새로운 통치형태가 일탈이 아니라 ‘규범’이 된 방식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예외상태 개념의 문제점
그러나 아감벤은 전지구적 안전, 일국의 주권, 인권협약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고대 로마에서부터 최근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긴급함(비상)이 문제되는 법령들을 ‘진화론적’으로 추적해 이 모두를 예외상태라는 개념으로 부르는 데 그치고 있다. 이는 아감벤이 현대의 나치수용소에서 탄생한 삶정치의 전체주의를 ‘가능한 미래’라고 여기며, 그 틀을 통해서 현재를 읽으려고 고집하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정치학연구소의 파스콸 파스키노와 미셸 트로퍼는 예외상태와 관련된 서로 상이한 정책들을 구별하며 각각의 이질성에 주목한다. 예외의 대상, 공간, 기간 등을 한정하고 실제 발생한 일의 사후 감독을 명시하는 성문법에서의 예외상태는 사전, 도중, 사후에도 절대 법으로 규제받지 않는 아감벤식 영구적 예외상태와는 정반대이다. 이 두 논리는 상이할 뿐만 아니라 연속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서 아감벤이 말하는 ‘법의 중지’로서의 예외상태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법관, 정치가, 군부가 말하는 예외상태는 서로 모두 다르다. 형태도 다르고(공표되느냐 안 되느냐), 범위도 다르며(제한적이냐 아니냐), 영향력(인권, 국제법에서의 강제규범, 자유, 생명의 보호 등 어디에 영향을 미치느냐)도 다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외상태에 대한 일반이론이 아니라 각각의 독특한 작동방식을 추적하는 일이다.
<예외상태>(2005)에서 “모든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지속적인 경향과 발맞춰, 예외상태의 선포는 정상적인 통치기술로서의 안전 패러다임을 전례 없이 일반화하는 것으로 대체됐다”라고 언급했을 때, 아감벤은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논리를 전개해갈수록 법적으로 예외상태를 선포하는 것과 예외의 순간 자체를 혼동하며, 안전 패러다임을 경찰국가 패러다임과 혼동한다.
무엇보다도 아감벤은 안전 패러다임의 다양성과 이질성을 무시한다. 최근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전지구적 위협(테러, 전쟁, 조직범죄, 이주민 등)이 낳은 불안에 맞서는 전지구적 안전을 강력히 주장하며 내놓는 담론들도 이런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불)안전 담론은 관련 정보의 초국적 교환, 첩보의 일상화, 국방과 국내 안보의 융합 등으로 인한 각국 관련 기관들의 전지구적 네트워크화를 통해 구성되어왔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곧 전지구적 치안을 낳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전지구적 엘리트 집단이 시민들의 자유를 위해 뭔가 신중하게 고안해놓은 통일된 전략이 아니라는 말이다.

팬옵티콘에서 밴옵티콘으로
아감벤의 ‘추방(ban)’ 개념과 미셸 푸코의 (팬)옵티콘([pan]opticon) 개념을 합친 밴옵티콘(banopticon)은 바로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안됐다. 이 개념은 전지구적 안전을 둘러싼 채 이질적이고 횡단적인 행위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초국적 수준에서 (불)안전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위협, 이민, 내부의 적, 급진 이슬람교도 등에 대한) 담론, (정보기관, 정부, 국제기구, NGO 같은) 제도, (공항의 억류소ㆍ대기실ㆍ쉥겐구역, 비디오감시카메라 네트워크 같은) 건축학적 구조, (테러, 이민, 조직범죄, 불법노동, 망명, 피고의 권리 제한에 관련된) 법률, (불법체류자 단속, 각 정부기관들간의 추방/송환 협정 같은) 행정조치 등에서의 이질성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밴옵티콘은 팬옵티콘과 다르다. 후자에서는 전체(pan-) 인구가 감시자의 시선에 노출됨으로써 감시된다. 그러나 전자에서는 피부색, 억양, 거동 등 각 개인의 프로필이 작성됨으로써 소수의 특정 집단이 감시된다. 감시자는 이 프로파일링에 의거해 그들이 장차 저지를지 모를 행위를 빌미로 특정 집단을 색출해 추방한다. 후자의 경우 알려진 과거에 의거해 현재가 감시받는다면, 전자의 경우에는 필립 K. 딕의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미래가 감시받는 셈이다. 감시자는 이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게끔 놔둔다. EU에서는 상품, 자본, 정보, 노동력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런 환상을 가능케 해준다.
물론 우리는 밴옵티콘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을 앞으로 면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신자유주의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유ㆍ안전ㆍ정의의 공간을, 나아가 국민국가를 초월한 사회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아감벤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개념이 이런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디디에 비고(Didier Bigo)는 프랑스의 분쟁연구소 소장과 국제문제연구소(CERI) 연구원을 겸하고 있는 국제문제 전문가이다. EU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위한 정책을 연구한 ELISE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 <9.11의 이름으로: 테러리즘의 시험대에 오른 민주주의>(Découverte,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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