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본교 산업교육원 주최로 영신관 앞뜰에서 ‘레이싱걸 사진촬영대회’가 열렸다. 행사 전 홍보메일을 여러 차례 받은 학생들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중앙人’에 이번 행사를 “철학 없는 이벤트”라고 비판하며 대학 내 “성 상품화”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논쟁이 가열되자 급기야 행사를 기획한 담당자의 해명이 올라오긴 했지만 행사는 많은 학생들의 참여 속에 별 탈 없이 진행됐다. 캠퍼스 안에 레이싱걸을 세워놓고 학생들이 둘러앉아 사진을 찍는 모습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광경이 되어 인터넷매체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주황색 블라우스 밑단의 단추를 풀어 배꼽 위로 묶어 올리고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는 레이싱걸의 섹시한 포즈 옆으로 로또복권 추첨공 모양의 아이콘에 박혀 있는 볼드체 문구 ‘장학금 300만원’. 레이싱걸 사진촬영대회의 홍보포스터는 자본과 성상품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자극한다. 수상작에 걸려 있는 상금도 학생들이 외면하기엔 꽤 큰 액수다. 그런데 반라나 다름없는 복장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사진촬영 콘테스트를 벌인 다음 우승자에게 장학금을 준다니. 아무래도 행사의 기획의도가 의문스럽다.


“공부에 지쳤으니 남학생들 눈요기나 하라는 것이냐”며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행사를 기획한 산업교육원 담당자는 게시글을 통해 “남학생의 눈요기나 여성비하의 차원이 아닌 교육과정의 특성을 고려한 촬영대회”라며 “레이싱걸의 복장도 학교의 격에 맞도록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과연 모델들은 배꼽티에 숏팬츠 정도로 ‘학교의 격’에 맞춰줬다.


행사 기획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모델이 레이싱걸”일 뿐, 본 행사는 ‘패션사진실습’이라는 교육적인 목적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촬영실습을 위해 굳이 유명 레이싱걸을 섭외해야 했는가. 이에 대해 주최측은 ‘레이싱걸’이 아니라 ‘레이싱모델’이라고 해명했다. 여기에는 레이싱걸은 천박하지만 레이싱모델은 전문 직업모델이니 괜찮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레이싱걸이냐 레이싱모델이냐에 있지 않다.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에서 버젓이 여성들을 전시하고 수차례 홍보메일을 보내며 돈을 미끼삼아 학생들의 관심과 행사참여를 독려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주최측은 “어떠한 상업적인 의도도 없다”고 밝혔지만 여기에는 학문적인 의도도 없어 보인다. 개교90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한 행사라는데, 대체 어디로 도약하겠다는 것인가.


겉만 요란한 개교90주년 자축 이벤트들이 성행하는 가운데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대학의 위태로운 현재가 목도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개교100주년에는 캠퍼스 내에서 어떤 기괴한 이벤트들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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