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주 /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역사 속에 사라졌던 전염병들이 진화, 변종된 형태로 재등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에이즈나 사스, 에볼라 등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신종 전염병이 수년 내 창궐할 우려가 있다고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21세기 새로운 전염병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알아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인류 역사에서 천연두, 페스트, 콜레라 등 전염병은 전쟁 및 기근과 함께 인류의 발전과 생존에 끊임없는 위협을 가해왔다. 14세기에 창궐한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한 사례는 전염병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20세기에 들어 의학의 발전으로 백신 및 항생제를 사용함에 따라 전염병은 현저히 감소되었다. 드디어 1969년 미국 공중보건국장 윌리엄 스튜어트는 “마침내 전염병 교과서를 덮어야 될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선언하며 지구상에서 전염병이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견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가 백신 사용으로 소멸되었음을 선언하여 이러한 기대가 실현 가능함을 확인시켜준 바 있다.
그러나 1981년 미국에서 에이즈가 처음 출현하고 2003년 사스와 조류인플루엔자가 나타나는 등, 거의 매년 신종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전염병으로부터 인류가 해방될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여전히 전염병은 세계인구가 사망하는 원인 중 1/4을 차지할 정도로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처럼 신종 전염병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감소했던 말라리아, 결핵과 같은 전염병이 다시 증가하거나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로써 21세기는 오히려 백신과 항생제 발견 이전, 암흑의 전염병 시대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세계적으로 확산된 에이즈로 인해 이미 2천5백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지난해에는 3천3백만 명의 환자와 2백10만 명의 사망자가 생기기도 했다.

세계화는 신종 전염병 출현의 주원인
신종 및 재출현 전염병이 대두하는 원인으로는 ①인간의 인구학적·생태학적 변화, ②산업 및 기술의 발전, ③경제발전과 더불어 토지 이용 양상의 변화, ④국제 교역 및 여행의 증가, ⑤미생물 적응력 변화, ⑥경제적·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인한 공중보건체계의 이완 및 와해 등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최근 가속화하고 있는 세계화는 국가간 장벽을 허물고 경제적·문화적 체계를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나, 뜻밖에도 전염병 확산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동물과 식품의 국제적인 교역은 병원체를 보유한 동물(가축, 가금류, 조류), 매개체(모기, 설치류), 오염된 육류를 통하여 국가간 전염병을 전파시키고 있다. 병원체 보유 동물 및 매개체의 교류에 의한 것으로는 조류인플루엔자, 말라리아, 한타바이러스 감염 등이 있다. O157 장출혈성 대장균과 광우병은 육류 오염에 의한 전파의 좋은 예이다.
관광, 경제활동, 이민 등을 목적으로 한 국제적인 인적 교류는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전염병 확산의 경로가 되고 있다. 2003년 중국 남부에서 발병한 사스가 항공여행객을 통하여 단기간에 세계 30여 개국에 확산된 것은 인적 교류를 통해 전염병이 확산하는 단적인 예다. 사람이 병원체를 보유하여 전파시키는 전염병으로는 에이즈, 인플루엔자, 사스, 결핵, 수막구균 감염, 홍역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그 전파속도는 전례 없이 빠를 것이며 피해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측된다.

산업화로 인한 병원체의 반격
밀림의 파괴와 산업화는 야생동물이 보유하고 있던 신종 병원체가 사람에게 전염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9년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니파뇌염바이러스는 돼지농장이 신축되는 과정에서, 밀림의 박쥐로부터 전파된 것이다. 사스바이러스도 중국 남부에 서식하고 있던 박쥐로부터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염병 확산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전염병 감염에 취약한 노인과 암환자 및 장기이식환자의 증가, 전염병 전파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인구의 대도시 집중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요즘 인류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지구온난화도 전염병 병원체, 매개체, 보유 동물의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데, 예를 들어 설사병과 뎅기열의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더군다나 과거에는 곧잘 항생제에 반응하던 세균이 이제는 내성을 보여, 반코마이신 내성 포도구균과 같은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인류에 대한 미생물 병원체의 전방위적인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신종 전염병 대두 및 확산으로부터 인류의 공중보건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감시, 협력 및 공조가 필수적이다. 2003년 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당시, WHO를 중심으로 국가간 감시 및 방역체계를 가동하고 환자를 격리 및 치료함으로써 바이러스 확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한 것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국내에서도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신종 전염병에 대한 전면적인 방역체제를 확립해야 하며, 특히 외국으로부터의 전염병 유입을 감시하고 국제적인 협력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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