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후보가 된 전설의 돼지 피가수스

1968년 8월 23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인터내셔널 앰피시어터. 건물 주변은 미국의 제 37대 대통령후보를 뽑는 민주당 전당대회 준비로 분주했다. 그때 일군의 청년들이 한 마리 돼지를 몰고 나타났다. ‘불멸의 피가수스’라는 이름의 이 돼지는 청년들이 추대한 대통령후보였다. 곧 수백 명의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청년들은 돼지를 풀어 소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대응했지만 결국 모두 체포됐다.
1968년의 민주당 전당대회는 마틴 루터 킹과 당시 민주당의 유력 대통령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된 직후 개최된 것으로서, 언론매체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고 있었다. 반전운동가들은 이 기회를 자신들의 대의를 알릴 통로로 만들기 위해 저마다 주도면밀한 계획을 준비 중이었다.
이 반전운동가들 중에 미국의 이피운동을 이끌던 애비 호프먼과 제리 루빈이 있었다. 그들은 기존의 연좌농성이 효력을 다했다는 판단 아래 뭔가 색다른 시위방식을 고민했다. 결국 그들이 찾은 것은 기성 언론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었고, 그에 필요한 퍼포먼스를 준비했던 것이다.
때맞춰 기자들이 현장에 도착하고, 경찰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다 이들의 안배였다. 계획은 적중했다. 이들이 연행된 뒤에도 구경꾼들은 피가수스와 흥겹게 기념사진을 찍고, 저마다 이피임을 자처하며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다음날 오전 10시가 되자 모든 사람들은 언론매체를 통해 이 날의 소동뿐만 아니라, 이피가 대중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반전운동의 대의까지 알게 됐다.
이 퍼포먼스가 있기 한 해 전,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이제 점거되어야 할 것은 모든 텔레비전 앞의 맨 앞자리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1968년 미국의 팝아트 예술가 앤디 워홀은 “머지않아 누구든 15분 내로 유명해질 수 있다”고 단언했다. 호프먼과 루빈은 에코와 워홀의 말에 깃든 시대정신을 ‘문화적 게릴라전’이라는 새로운 저항전술로 멋지게 구현했던 게 아닐까? 저항은 이렇게 시작될 수도 있다. 흥겹게.유쾌하게. 그러니 다같이 Say, “Why So Se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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