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라 / 파리 소르본대학 응용인문학연구소 정치사회학 박사과정

<편집자주> 현재 프랑스 학계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치노선을 지칭하는 ‘사르코지즘’의 정체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작년 5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자는 사르코지를 자신의 “정신적 동지”라고 불렀다. 현지의 사르코지즘 논쟁을 통해 향후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줄 리더십과 정치노선의 향방을 간접적으로 가늠해본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의 리더십과 정치노선을 가리키는 사르코지즘은 이념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명확히 규정된 독트린이 아니며, 완전히 새로운 정치현상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사르코지즘을 보나파르티즘과 실용주의의 결합이나 명확한 지향 없이 미국의 신보수주의, 포퓰리즘, 행동주의를 섞은 것으로 본다. 즉, ‘기초’보다 ‘성과’가 더 고려되는 혼합주의라는 것이다.
실용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사르코지에 비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양국의 정치적 지형과 맥락의 현격한 차이를 고려해야하므로 보다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특히 사르코지즘은 사르코지 개인의 정치적 성향만이 아니라 최근 프랑스 사회가 강하게 추구하는 경향이 압축적으로 반영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먼저 사르코지즘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사르코지즘
작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프랑스 학계에서 계속된 사르코지즘 논쟁은 주로 세 가지 축으로 나뉜다. 우선 사르코지의 독특한 리더십에 대한 것이다. 헝가리 이민 2세대이자 평범한 일반대학 출신인 사르코지는 정치경력 30년 동안 예산장관, 내무장관, 재경장관 등 요직을 거치며 어느 곳에서든 강력한 정책추진으로 주목받았다. 사르코지의 ‘눈에 띄는 정치행보’는 대통령 당선 뒤에도 이어졌다. <사르코지즘>의 저자 올리비에 뒤아멜과 미셸 필드는 사르코지가 당선 직후 전 부인과 이혼하고 인기가수 카를라 부르니와 재혼했으며, 부유층·연예인들과의 두터운 친분을 드러내고, 고급시계와 안경을 즐겨 착용하는 등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스타일’에 주목한다. 이처럼 사르코지는 사적영역에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며 직설적인 화법과 거침없는 행보로 젊고 색다른 리더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들이 주목하는 사르코지즘의 핵심은 현 정부의 정책방향이다. 사르코지는 재경부장관 재임시절인 2004년부터 엠마뉴엘 미뇽(‘사르코지즘의 두뇌’)을 중심으로 2백50여 명의 전문가집단을 통해 대선공약과 대중운동연합(UMP)의 정책을 개념화하도록 했는데, 여기에 많은 중도좌파 인사들도 포함됐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국경없는 의사회’ 창설자인 사회당의 베르나르 쿠슈네르를 외무장관에 기용한 것을 비롯해 내각의 사분의 일을 좌파와 중도파로 꾸렸다. 정부개혁의 싱크탱크인 ‘성장위원회’ 위원장에 사회당의 정책참모였던 자크 아탈리를 임명하고,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사회당 중진의원 자크 랑을 정부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영입했다.
이런 포용인사에서 시작된 사르코지의 ‘실용주의’는 적극적인 세일즈외교에서 잘 드러났으며, 아프카니스탄 추가파병을 결정하는 등 이라크전쟁으로 소원해졌던 미국과의 관계도 복원시켰다. 국내에서는 사회연대세(부유세) 완화 등 세제를 개편하고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완화했으며, 역대 정권들이 손대지 못한 공기업 특별연금개혁, 공무원감축, 각료축소, 대학개혁 등 공공부문 개혁도 단행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정부의 일관된 전략부재로 사법, 이민정책 등 여러 공공활동 기획들 사이에서 모순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철학의 부재에 다름 아닌 실용주의는 정책방향을 더욱 친자본적이고 시장중심적인 경제논리로 치우치게 했다.
마지막으로 사르코지즘은 사르코지가 내세우는 가치와 담론으로 접근된다. 그의 정치담론들은 좌파가 내세우고 중도우파가 인정하던 보편적 가치들에 가려져 있던 프랑스인 개인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국가적 정체성과 경쟁력 강조와 이민자에 대한 강경한 태도, “더 일하고, 더 벌자”로 대변되는 노동의 과잉가치화, “68혁명의 유산을 청산하자”는 기치를 통한 사회윤리 강조 등 오랫동안 연대와 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들에 밀려 거론조차 못하던 일들을 추진함으로써 우파들의 대중적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는 보편가치의 이면에 있던 상징적 대상들, 가령 범죄의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가치화하는 것을 통해 이뤄졌다. 희생자 또는 “고통 받는 대중”이라는 형상을 통해 프랑스와 프랑스의 시민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창조해낸 것이다.

사르코지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작년 7월 정치분석저널 <사르코파쥬>를 창간한 폴 아리에스는 <사르코지즘의 재앙>에서 사르코지즘은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 이미 승리한 신보수주의적 반혁명의 프랑스판이며, 그동안의 역사를 통해 이뤄낸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가치들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또한 렌느2대학 교수 피에르 뮈소는 <사르코베를루스코니즘>에서 사르코지즘은 노동의 가치 찬미, 보호주의의 색채를 짙게 띤 자유주의, 이식된 미국주의 등 많은 점에서 이탈리아의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와 비견된다고 썼다.
프랑스 사회를 투시해볼 기회를 제공해주는 사르코지즘으로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 사회를 엿볼 수 있다면, 이명박정부의 한국 사회를 엿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각국의 차이를 고려해야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베를루스코니에 이어 사르코지와 이명박 모두 최근에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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