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세광 /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편집자주> 현재 전세계 학계는 삶정치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사회의 여러 현상을 분석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생명을 복제할 수준까지 다다른 최첨단 생명공학, 2001년 9·11사건 이후 확산된 테러와의 전쟁, 안전담론의 확산 등이 삶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온 배경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에 최근의 삶정치 관련 논의들을 중심으로 삶정치 개념의 현재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국제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삶정치 개념은 일련의 차이들을 계속 흐릿하게 만들고 있는데,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이론적 기획들이 그걸 돕고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알베르토 토스카노의 말이다. 실제로 오늘날 삶정치 개념은 여러 분야에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으로 이는 이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두 단어 ‘삶’과 ‘정치’ 자체의 다의성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개념 자체의 오랜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오늘날의 모든 삶정치 관련 논의가 미셸 푸코의 삶정치 개념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이에는 세계적인 화제작이 된 <호모사케르>(1995)라는 책을 통해 푸코의 삶정치 개념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공로도 컸지만, 더 중요하게는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행한 일련의 강연들 중 삶정치 개념을 바탕에 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1976), <안전, 영토, 인구>(1978), <삶정치의 탄생>(1979)이 속속 발간되면서 푸코의 삶정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삶정치 철학자 푸코가 재발견된 것이다.

주권권력에서 삶권력으로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1976)에서 푸코는 성적 장치들의 구성과 변모를 추적하며 중세부터 시작되는 서구 권력의 역사를 소묘한 바 있다. 여기서 푸코는 로마의 가부장에게 부여된 자녀 및 노예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가부장의 전권’으로부터 전승되어 봉건영주가 행사하던 ‘생살여탈권’이 군주와 부르주아지의 수중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생명에 작동하는 권력’으로 변하게 됐는지를 분석했다. 즉,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주권권력이 어떻게 “살게 만들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삶권력으로 변모하게 됐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후자의 권력은 두 가지 형식을 갖는다. 첫 번째 형식은 규율 테크닉으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푸코는 이를 ‘인체의 해부정치’라 불렀다. 이 해부정치는 개인이라는 신체-기계를 만들어내 감시하고 조련하며, 행동을 통제하고, 적성을 측정하고, 그를 가장 유용한 위치에 놓아 활용한다. 두 번째 형식은 18세기 중엽에 형성됐으며 개인들이 아니라 ‘종으로서의 신체’, 즉 생명의 역학이 관통하고 있고 생물학적 절차의 근간으로 사용되는 종-신체라는 집단을 둘러싼 일련의 ‘조절적 통제’로 이뤄졌다. 이것은 이제 주거, 도시 생활환경, 이동, 공중위생, 출생률, 사망률 등과 같이 인구를 소멸하게 하거나 생성, 증가, 발전하게 해주는 요소들을 관리해야 하는 ‘인구에 대한 삶정치’인 것이다.
<안전, 영토, 인구>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와 더불어 이 ‘삶정치’의 문제(“인간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생물학적 요소들이 정치와 정치전략 그리고 일반적인 권력의 전략 내부에 들어와 작동하게 되는 메커니즘의 총체”)로부터 출발해 규율 메커니즘과 구별되며, ‘인구’를 표적으로 삼아 특수한 조절적 지식에 입각해 관리하는 새로운 권력장치가 18세기에 어떻게 설정·정착됐는지를 연구하려고 시도한다.
이와 같은 ‘인간통치기술’의 변환 양상은 실제로 ‘통치’의 변환을 수반하게 된다. ‘통치기술’에 근거하게 되는 이 ‘통치’ 개념은 후에 ‘자기통치’ 개념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통치’와 ‘통치성’ 개념이 중요하게 되고 푸코는 <안전, 영토, 인구>의 강의 초반부에 인구와 관련된 안전장치의 분석을 계속하다가 돌연 방향을 완전히 바꿔 근대국가의 계보학, ‘통치성의 계보학’으로 연구의 방향을 급선회해버린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는 중요한 두 시기가 연구됐다. 통치성의 역사에서 푸코는 우선 그리스-로마 문명과 이질적이고 기독교에 의해 개발된 ‘사목권력’, 즉 개인적으로 인간을 구제하는 일을 담당하는 ‘영혼의 목자’의 권력, 양들과 목자 간의 철저한 상호의존 관계를 논한다. 다음으로 푸코는 ‘사목권력’의 위기를 통해 국가이성의 문제를 끌어내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16~17세기에 정치적인 통치성이 형성되어 개인들의 행실이 군주의 권력 행사의 범주에 들어가는 시기이다. 푸코는 신민들을 개별화함과 동시에 총체화하는 정치합리성의 두 얼굴, 요컨대 사목과 통치라는 근대국가의 기원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통적인 ‘권력’ 개념의 변화
이런 연구를 토대로 <삶정치의 탄생>에서 푸코는 자유주의가 이 통치기술을 어떻게 과학과 정치경제학으로 변형시키는지를 치밀하게 연구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외관상 별 중요성이 없어 보이는 ‘통치하다’라는 개념에 16세기의 저술가 기욤 드 라 페리에르가 부여한 정의로부터 푸코가 끌어내는 의미와 생각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라페리에르는 “통치자는 군주, 황제, 왕, 왕자, 영주, 법관, 고위 성직자, 판사 등으로 불릴 수 있다”고 진부하게 말한다. 여기로부터 푸코가 끌어내는 관념은 무엇일까? 그것은 통치행위가 다양하고 복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군주, 가부장, 수도원의 상급자, 교육자, 판사, 의사 인구학자, 보험업자, 공증인 등이 모두 통치자의 범주에 포함된다. 또한 통치한다는 것은 단지 영토와 신민만을 통치하는 단조로운 행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소유한 바를 부, 자원, 식량, 영토라고 하는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또 이와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는 관습, 풍속, 행동과 사고방식, 기근, 전염병, 죽음과 같은 사건과 불행과의 관계 속에서 다루고 조절하는 기술적 행위라는 점이다.
요컨대 이제 권력(정치)의 대상은 개체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간(인구) 전체가 됐다는 것, 권력은 개인들의 규율과 예속에 신경쓰는 것만큼, 아니 오히려 더 인구 전체의 관리에 주력하게 됐다는 것, 권력의 행사는 국가를 중심으로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푸코가 삶정치 개념으로 포착하려고 했던 내용이다. 우리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안전, 영토, 인구>, <삶정치의 탄생> 등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처럼 삶정치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권력’ 개념이 변화됐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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